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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가 돼야 할 ‘서북청년단’

등록 : 2014.09.29 20:41수정 : 2014.09.30 09:10

 

가칭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을 절단·수거하겠다며 가위와 박스를 들고 나서려다 경찰에 제지 당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현장에서]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시민들이 매단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며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란 이름의 단체가 나타났다. 이 단체 회원 10여명은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이라며 “이런 정신을 계승해서 서북청년단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체마저 의심스러운 이들이 사회적 주목을 끌기 위해 벌이는 일탈 행동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서북청년단(서청) 재건 선언’이 나올 정도라면 문제가 다르다. 서청이 어떤 단체인가?

서청은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의 남한 사회에서 정치테러의 한복판에 있었다. 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는 서청이 제주에서 저지른 잔혹한 행위의 여러 사례가 담겨 있다.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 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그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271~272쪽)

4·3을 겪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서청은 공포와 전율 그 자체였다. 서청이 4·3 당시 저지른 백색테러와 살상, 부녀자 겁탈 등 잔혹행위는 제주 사람들의 뼛속 깊이 박혀 있다. 4·3의 발생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서청의 제주도민에 대한 테러행위였다. 심지어 제주도청 2인자인 국장이 서청에게 고문치사를 당해도 서청은 처벌받지 않았다. 서청 위원장이었던 문봉제조차도 훗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었으니까 제주도민의 억울한 희생도 많았다”고 자인할 만큼 서청의 폭력은 극단적이었다.

1946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서청은 이북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만든 극우청년단체다. 이승만의 후원을 업은 서청은 당시 주한미군도 “‘빨갱이 사냥’에 매달렸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서청의 정치테러는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청 회원이었다. 자신들이 좌파 성향이라고 간주한 기업가나 언론인, 노동자, 대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자행했다. 이들은 ‘애국’과 ‘멸공’을 명분으로 전국 곳곳에서 태극기 강매와 이승만 사진 판매, 강제모금과 테러 등을 일삼았다.

세월호 추모 리본 제거에 나선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는 ‘유가족 눈치만 보는 서울시장과 정부를 대신해 이 일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단식중인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일부 극우세력이 급기야 사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파시즘에 기운 주장까지 들고나온 것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29일 트위터에서 “서북청년단은 지존파보다 훨씬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지존파 재건위’가 (범죄단체 조직죄로) 마땅히 처벌되어야 하듯이, ‘서북청년단 재건위’도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3 연구자들은 “제주에서의 서청의 만행은 쉽게 잊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광기의 시대에 나타난 광인들이었다”고 했다. 4·3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에 서청 운운하면서 나타난 그들이 서청의 잔혹성을 알면 서청이란 말을 쉽게 입에 담지 못할 것”이라고 분노했다.

허호준 기자
이들의 행위가 아무리 소수의 돌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서청을 재건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잊혀져 가는 악몽을 되살리는 것이다. ‘서청’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가 돼야 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한겨레신문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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