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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들이 본 박근혜 탄핵
"전원일치는 선동세력 향한 경고"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에 고무...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던 시대 끝나"
▲ 법학자가 본 박근혜 탄핵. | |
ⓒ 김예지 |
"전원일치는 당연한 결과다."
헌법학자들도 다른 국민과 다를 게 없었다. 대부분 헌법재판관 8대 0 전원일치 인용을 예상했지만,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모두 마친 뒤에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마이뉴스>는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직후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법학자 7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형법학자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헌법학자들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주로 지켜봤던 이들에게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의 의미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왜곡된 질서의 종말, 박정희 신화에 종지부"
▲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김종철 교수는 "헌법학자로서 일반시민보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면서 "헌법을 무시하고 법률에 안 맞게 정치를 운영하는 데 대한 준엄한 하나의 기준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한국공법학회장인 이헌환 아주대 법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이번 결정을 '20세기 왜곡된 질서의 종말'로 규정했다. 이 교수는 "오늘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이라면서 "박정희 권력이라는 왜곡된 질서의 마지막 상징인 그 딸까지 사라지면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합리성이 정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적으로는 당연한 법치주의의 결과지만 정치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박정희 신화로부터 국민들이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국가 경영이 정상화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박 대통령이) 국회와 언론을 속이고 견제 기능을 못 하게 감췄다고 지적한 것은 앞으로 반복될 여지가 있는 사건을 미리 경고하는 의미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원일치는 탄핵 반대 선동 세력에 대한 준엄한 경고"
▲ 탄핵반대 집회 '벚꽃 대선 꿈도 꾸지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친박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박 대통령 탄핵심판 각하를 요구하고 있다. | |
ⓒ 유성호 |
특히 헌법학자들은 재판관 전원일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김종철 교수는 "그동안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태극기 집회로 상징되는 일부 국민과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재의 권위를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대응했다"면서 "헌재의 전원일치 결정은 국민을 오도하고 선동하는 행태를 준엄하게 경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이 기각되면 기업을 등쳐서 사인의 배를 불려도 된다는 공개 허가증이 되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서 "국민이 헌재 결정을 우려한 건 과거 주요 사건에서 의외의 결론을 내려 불안감이 있어서인데 정치·사회적 압력이 높았던 사건에선 헌재도 대세를 따랐다. 이 사건도 국민의 압도적인 여론이 탄핵이어서 대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탄핵 인용 결정문 낭독에는 21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기각 당시 26분보다 짧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에서 재판관들 사이에 논란되는 부분을 털어버리고 전원일치로 가자고 결정한 것 같다"면서 "판결 내용이 간결한 것도 사회적 분란 여지를 없애려는 노력이고 재판관 모두가 합의할 수준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한 교수는 "삼성 뇌물수수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건 두고두고 비판받을 부분"이라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국가가 부당하게 개입한 부분은 삼성이 가장 두드려졌는데 삼성 이재용 문제를 적시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헌재와 국민의 손에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사법적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건 아니다. 형법학자인 조국 교수는 "헌법재판소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형법적 절차가 남아있다"면서 " 파면된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로 확정돼 엄격한 검찰 수사와 처벌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한상희 교수는 "탄핵 이후 불필요한 분쟁과 대립을 막으려고 헌재가 할 일은 다 했다"면서 "이제 정치권에서 탄핵 촛불 시민들의 희망 사항과 적폐청산 요구를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공은 대선주자에게 넘어갔다. 제대로 시대적 소명을 해낼지 잘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다음은 법학자들 인터뷰 전문이다.(이름 가나다 순)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 "전원일치는 선동 세력을 향한 준엄한 경고"
"기대 속에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는데 헌재가 다행히 순리대로 현명한 결정을 했다. 우리 국민에게도 헌재에게도 다행한 일이다. 헌재에게 탄핵심판을 맡긴 헌법의 태도가 적절했고, 대통령의 헌법 위반 통제 장치로 합리적 작용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동안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태극기 집회로 상징되는 일부 국민과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재의 권위를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대응했다. 헌재의 전원일치 결정은 국민을 오도하고 선동하는 행태를 준엄하게 경고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을 겪었지만, 정치문화와 시민의식, 정치인 의식 속에는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권위주의적 인식이 지속돼 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정운영 중심을 대통령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지만, 우리 헌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은 삼권 가운데 하나일 뿐인 데도 대통령에만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탄핵소추나 인용 결정 과정을 통해 대통령 지위가 헌법이나 법률 위에 있지 않고 대통령 직무 범위 안에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헌법학자로서 일반시민보다 감회가 새롭다. 헌법을 무시하고 법률에 안 맞게 정치를 운영하는 데 대한 준엄한 하나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국민도 이를 계기로 헌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앞으로 헌법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김형성 성균관대 법대 교수] "탄핵은 국민의 힘, 사법부도 불신 벗어"
"탄핵 인용은 당연한 결론이다. 대단한 법리가 없더라도 상식이다. 대포폰 쓰는 대통령이 권력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나.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던 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지 이 사안 자체가 탄핵감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사법부가 반성해야 한다. 탄핵 반대 집회가 왜 생겼겠느냐.
국정이 국민의 위임에 의해 이뤄지는데 그 궤도를 이탈하면 누구라도 탄핵 판단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 헌재의 탄핵 인용도 국민의 영향이라고 봐야 한다.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국민의 일치된 견해(탄핵지지율)가 70~80% 내외로 계속 지속된 적이 없었다. 그래도 기각될까 불안했던 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었던 건데 이번에 해소됐다고 본다.
법적으로는 당연한 법치의 결과지만 정치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정희 신화로부터 국민들이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국가 경영이 정상화되는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송기춘 전북대 법대 교수] "대통령은 헌법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 재확인"
"가슴이 벅차지만, 한편으로 씁쓸하다. 우리가 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나. 국민이 지난겨울 동안 겪은 일로 힘들었는데 많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기대가 섞이긴 했지만, 전원일치로 인용해야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앞으로 있을 헌법적 분쟁을 차단하고 소모적인 싸움을 막을 수 있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지도력을 발휘해 반대의견을 조정하길 바랐는데 그렇게 한 것 같다.
이번 결정은 헌법에서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원리,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 원리를 확인해준 사건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대통령도 국민이 선출하는데 국민 신임을 잃으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헌재의 탄핵 인용보다 탄핵 소추 과정 자체가 시민의 각성을 가져온 사건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헌법 위에 있었다.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국회와 법원의 감시 기능을 깨우쳤고 언론의 역할도 강조했다. 헌재도 인용결정문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와 언론을 속이고 견제 기능을 못 하게 감췄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반복될 여지가 있는 사건을 경고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헌환 아주대 법대 교수] "박근혜 탄핵은 20세기 왜곡된 질서의 종말"
"개인적으로 8대 0 전원일치를 예상했다. 사안 전체는 아니지만, 탄핵소추 사유 각각에 헌법 위반이나 법률 위반을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정 재판관이 한두 개 사유에 대해 중대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소추 사유 전부 안 된다고 판단하는 건 재판관의 최소한의 법적 양심 때문에라도 반대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이다. 단순히 1987년 체제 관점에서 과거를 딛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20세기 질서에서 21세기 질서로 넘어가는 변곡점으로 본다. 20세기 100년 동안 고난과 질곡의 역사를 거치며 법치주의 등 왜곡된 질서가 형성됐는데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종말을 고하고 21세기 질서로 가치와 이념을 새롭게 확인하는 출발선에 있다.
박정희 정권 유산의 마지막 정리라는 것도 범주가 좁다. 박정희 권력의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가 군부 쿠데타를 극복했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딸까지 사라지면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합리성이 정착해가는, 국민의 규범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태호 경희대 법대 교수] "대세 따른 헌재, 법치-민주주의 격상시켜"
"마이크가 안창호 재판관(국회 옛 새누리당 추천) 앞에도 놓였다고 해서, (탄핵 기각하는) 소수의견이 나오나 가슴 졸였는데 아니었다. 법조인들이라면 이런 사실을 놓고 기각으로 논증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사안이 중대하고 국회 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이 넘쳐났다. 인용이 나오면 8대 0이고, 기각되면 5대 3 정도 나올 걸로 생각했지만, 그 가능성은 낮게 봤다.
자기주장을 맘대로 할 수 있는 변호사가 아니라 재판관 입장에서 보면 헌재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탄핵이 기각되면 그 논증에 따라 기업을 등쳐서 사인의 배를 불려도 된다는 공개 허가증이 된다. 이런 결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국민이 헌재 결정을 우려한 건 과거 주요 사건에서 의외의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마음 한 켠에 불안감이 있어서다. 하지만 정치·사회적 압력이 높았던 사건에선 헌재는 대세를 따랐다. 이 사건도 국민의 압도적인 여론이 탄핵이었고, 국회도 압도적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재판관들이 세상을 보는 창인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 사회도 탄핵으로 기울어 대세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결정은 대통령이란 자리, 공직이 갖는 공익성을 분명히 확인한 결정이었다. 과거 역대 대통령이 국가를 사유화했던 전례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결정으로 통해 대통령이란 자리는 절대 사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걸 분명히 했다. 우리 법치주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킨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결정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피의자 박근혜 수사와 처벌 절차만 남아"
"8대 0 전원일치 예상했고, 5가지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한두 가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걸로 예상했다. 소추 과정에서 절차적 위반 전혀 없고 5가지 중 3가지가 아니라고 봤는데 핵심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수개월간 촛불을 들 만큼 역사상 유례 없는 무도하고 무법한 대통령에 파면 결정한 건 헌법재판관들의 고뇌가 기반이 됐지만, 근본적인 건 국민의 힘이었다. 재판관 전원일치여서 논란의 여지가 없게 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헌법재판소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형법적 절차가 남아있다. 박 전 대통령이 피의자로 확정돼 엄격한 수사와 처벌 절차가 남아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삼성 이재용 뇌물수수 빠뜨려 아쉬워"
"희망적인 예상과 냉철한 예상이 있었는데 후자가 맞았다. 나는 세월호 문제에 헌재가 좀 더 분명히 선을 그어주길 바랐는데 너무 간결하게 넘어갔다. 냉철하게 보면 그 판단이 옮다. 재판관 만장일치를 이끌려고 결정문 내용을 일부 틀어버렸다고 본다.
첫째(문체부 공직자 해임 지시)와 둘째(언론자유침해) 사유는 애매모호하다고 넘기고 셋째(세월호 문제) 사유가 재판관 사이에 논란이 됐을 텐데, 논란 털어버리고 전원일치로 가자고 결정한 것 같다. 판결 내용이 간결한 것도 사회적 분란의 여지를 없애려고 노력한 것 같다. 재판관 모두가 합의할 수준에서 판단한 것이다. 사실관계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건 틀어버리고 더는 논란 없도록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삼성 뇌물수수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건 두고두고 비판받을 부분이다. 정경유착을 통해 국가가 부당하게 개입한 부분은 삼성이 가장 두드려졌는데, 삼성 이재용 문제 적시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느낌이다. 물론 내가 재판관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이재용이 최순실보다 오히려 명확한 사안이고 롯데와 포스코까지 언급하면서 삼성을 언급하지 안 했다는 것 이해하기 어렵다.
헌법학자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문제(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상 성실 수행 의무 위반)는 대통령이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정해서 대통령 권한을 제어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본다.
대통령 탄핵은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한 이후 역사상 두 번째다. 하지만 이번엔 국민의 힘과 헌법에 따라 탄핵했다. 헌법의 주인이 국민이 됐다는 선언이다. 탄핵 이후 불필요한 분쟁과 대립을 막으려고 헌재가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정치권에서 탄핵 촛불 시민들의 희망 사항과 적폐청산 요구를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공은 대선주자에게 넘어갔다. 제대로 시대적 소명을 해낼지 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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