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추억
- 발바닥 빳따와 가짜 소원수리
나는 1975년 사병으로 입대해서 1978년 병장 제대했다. 군대에서 매년 1,500명씩 죽어나가던 시절이었다. 그 숫자는 민주정부에 와서야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민주주의가 곧 국민의 생명이요 안전임을 말해준다. 계속 줄어가야 할 군내 사망자 수가 노무현 정부 때 최저에 이른 후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입대해서 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고 있을 때 군내 구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그때도 구타 근절이 전군에 하달됐을 것은 당연지사. 그 조치의 하나로 불시점검이란 것이 있었다. 불시에 상급부대에서 나와 사병들의 옷을 벗겨보고 구타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물론 제일 먼저 벗겨보는 곳이 엉덩이였다. 그러자 한동안 엉덩이 빳따가 싹 사라졌다. 그 대신 유행한 것이 발바닥 빳따였다. 불시점검 때 신발과 양말을 벗겨 발바닥까지 살펴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체 기합도 엎드려뻗쳐를 시켜 엉덩이를 때리는 대신, 내무반 침상 끝에 맨발을 나란히 내밀게 하여 발바닥들을 때리는 식이었다. 나 혼자 발바닥 빳따를 된통으로 맞은 적도 있었다. 나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 훈련소대가 잘못한다는 이유로 훈련병 가운데 선임 분대장이었던 내가 대표로 맞은 것이었는데, 아픈 정도가 엉덩이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유신시위로 제적·구속됐다가 강제징집 당한 처지였고 지지 않겠다는 오기 같은 것이 있어서 엉덩이 빳따 수십대 정도는 끄덕없이 버티곤 했다. 그런데 발바닥 빳따는 불과 몇 대에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다리가 저절로 오무려졌다. 그렇게 수십대 맞고 나니 두 발바닥이 퉁퉁 붓고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고, 훈련화에 발이 들어가지 않아 신발을 신을 수도 없었다. 별 수 없이 다음날 하루 종일 훈련과 일과에서 빠지고 내무반에서 다른 훈련병이 갖다주는 밥을 먹으며 넘겼다. 조교들도 모른체 해주었다.
그때도 신병 훈련을 마칠 때 소원수리가 있었다. 훈련소에서 겪었던 구타나 비리, 고충들을 무기명으로 적어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이 다가오자 조교들은 노골적으로 겁을 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삐딱한 내용 적어내면 죽을 줄 알아!”
“무기명으로 해도 누가 쓴 건지 다 확인할 수 있어!”
“한 놈만 잘못 써도 연대책임이야!”
팽팽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상급부대에서 아무런 사전예고 없이 소원수리를 받는다고 들이닥친 것은 퇴소 3일 전이었다. 물론 소원수리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조교들이 조성해놓은 공포분위기 때문에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소원수리팀의 지휘자가 간곡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된다… 조교들이 겁을 줬을텐데 모두 거짓말이다… 내일 모레면 수료고 조교들은 소원수리서를 아예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불이익을 줄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쓰지 않으면 후배들이 똑같은 일을 겪게 된다… 여러분은 끝났지만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 군대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이 겪은 부당한 일을 빠짐없이 써다오.”
한편으로는 창 밖에서 엿보는 조교를 붙잡아 훈련병들 앞에서 크게 야단쳐서 혼쭐을 내기도 했다. 그런 말과 모습에 설득되어 결국 꽤 많은 훈련병들이 열심히 소원을 적어냈다. 그런데 소원수리가 끝난 얼마 후 조교들이 몽둥이를 들고 “동작 그만!”하며 들이 닥쳤는데…… 우리가 적어낸 소원수리서가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었다.
“뭐 어째, 구타?”
“이거 쓴 놈 어느 새끼야?”
“지금 필적 조사하고 있는 밝혀지면 죽을 줄 알아!”
그 날 일과 끝날 때까지 몇 시간동안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지옥같은 단체 기합을 받았다. 훈련소 입소 이후 최장시간, 최고강도의 단체 기합이었다. 진짜 소원수리팀이 온 것은 퇴소 전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기하게도 지난번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은 말로 간곡하게 당부했다. 이번에는 전원이 끝까지 아무것도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 후 소원수리는 순진하게 임하다간 더 큰 화를 입게 된다는 것이 군복무동안 상식이 됐다. 자대배치 후에도 제대할 때까지 몇 번 소원수리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야! 야! 쓰지마, 쓰면 더 괴로워져.” 라는 말들로 넘어가곤 했다.
40년 다 되어가는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다. 그러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는 우리 군의 모습이다. 우리 세대가 겪은 군대를 우리의 아들들이 그대로 겪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군내 자체 감시체계와 고충처리체계가 구타 근절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군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군내 구타 근절을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윤일병 사건 같은 구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말단 지휘관부터 국방장관에 이르기까지 지휘계통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정성 있는 구타 근절 대책이 꾸준히 시행될 수 있다.
둘째, 고통 받는 병사들이 가족이나 친구, 스승 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통신의 자유를 허용해야하고, 가족도 그 소통을 통해 아들의 안녕과 건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활용할 수 있는 외부 소통의 수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과 후의 자유시간 내무반에서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전면 허용이 어려우면, 최소시간부터 시작하여 점차 시간을 늘려가는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병사들의 군내 PC방 사용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시간당 500원씩 유료로 사용하게 하는데, 일정한 기본시간의 사용은 무료로 하고 초과 사용시간만 유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본 사용시간에 미달하는 병사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확인하고, 적어도 기본 사용시간만큼은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독려해야 고참들의 위압 때문에 PC방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모병제로 전환될 때까지 우선 시행해야할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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