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 '전멸'? 무공천 다시 판단하라
[주장] 폐지 비판여론 커져... 정당공천제, 여성 등 소수자 보호 장점도14.03.25 10:41
최종 업데이트 14.03.25 10:41▲ '새정치 비전' 고민하는 김한길-안철수 통합신당 공동추진단장을 맡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비전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하며 제자리에 앉고 있다. | |
ⓒ 유성호 |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초단체장 전패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민주당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에서 재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졌던 이해식 강동구청장을 무소속 출마로 가정해 가상 대결을 시켰더니 무명의 새누리당 후보에게도 10%p 이상 격차로 뒤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박지원 전 원내대표, 정동영 상임고문, 이원욱 의원, 이목희 의원, 문용식 전 인터넷소통위원장 등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언론과 SNS를 통해 발을 벗고 나섰다.
"선거법은 개정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 정당은 공약도 무시한 채 공천을 강행하는데, 우리만 무공천으로 일관하면 후보 난립과 혼란으로 패배를 자초한다.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초의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6월 4일 투표장에 들어가면 새누리당 후보는 기호 1번에 배정돼 있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무소속이므로 기호 5번 이하에서 그것도 추첨으로 뽑기 때문에 선거구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무조건 2번에 익숙한 민주당 지지자들에겐 대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신당 창당의 명분이 "기초선거 무공천"이었기 때문이다.
전당원투표로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 당론 확정
그런데 "기초선거 무공천"당론은 누가 결정했는가? 민주당은 작년 7월 24일 14만7000여 명 전국권리당원 투표에서 67.7%의 찬성으로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바 있다. 이 당론은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협상에서 관철해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그 공직선거법 개정은 합의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 후 공천 여부에 대한 당론 결정 역시 전당원 투표를 통해 정하는 것이 옳았다. 민주당 당원은 당헌 제6조 제①항 제2호 규정에 따라 당의 정책입안과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기초선거 공천 여부는 당과 후보, 그리고 지지자들의 사활이 달린 문제인데 어떻게 당원 의사 한 번 묻지 않고 일방통행으로 갈 수가 있나? 평소에 꼬박 꼬박 당비를 납부하고 선거 때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봉사하는 20만 명 가까운 당원들이 아닌가.
이번 무공천 당론 결정은 "의원총회"가 만장일치로 김한길 당대표에게 위임하고, 이를 위임받은 김 대표가 통합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과 덜컥 합의해 준 것이다. 이런 비민주적 처사가 있는가. 민주당은 통합신당 당명을 정하면서 '민주'라는 이름을 끝까지 고집하여 관철 시켰다. 이름만 "민주"인 민주당, 당원과 민주주의는 없는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출발부터가 잘못 돼 가고 있다.
필자는 3월 22일 하루 동안 여론조사 전문기관 인텔리서치에 의뢰하여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에 거주하는 민주당 전국대의원을 대상으로 "기초선거 정당공천관련" 긴급 여론조사(ARS, 유효표본 1630명, RDD방식,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오차 ± 2.1%)를 실시했다.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공천 여부에 대한 응답을 보면, "기초선거 정당공천 재검토해야 한다"가 49.5%로 가장 높았으며, "무공천을 유지하되 단일후보를 정해서 지원해야 한다" 즉 절충안에 대한 대답은 29.8%였다. "무공천을 유지해야 한다"는 18.7%에 그쳤다.
둘째, 무공천으로 선거를 치를 경우 기초단체장선거 승패를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더니, "당선이 힘들다"가 62.5%로 압도적으로 나타났고, "접전이 될 것이다"는 18.4%, "당선이 무난하다"는 15.0%에 그쳤다. 또한 "무공천을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응답한 대의원의 82.7%가 당선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셋째, 무공천으로 선거를 치를 경우 광역단체장선거 득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물었더니, "손해를 볼 것이다"가 63.1%로 매우 높았고, "도움이 될 것이다"는 25.6%에 그쳤다. 역시 '무공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대의원의 81.4%가 광역단체장 선거에 "손해를 볼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마지막으로 정당공천 재검토 방식을 물었다. 과반수에 가까운 대의원(49.7%)이 "신당 당원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라고 응답했는데, "신임 지도부에 위임"(22.3%)과 "새정치비전위원회가 결정"(20.4%)은 합쳐도 이에 미치지 못했다.
공천폐지 찬성여론 낮아졌다
그동안 국민들의 기초선거 공천폐지 찬성 여론은 대체로 60% 이상이었으나,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들어서면서 부작용 등에 대한 우려로 공천유지 및 유보 의견이 급격히 증가했다. 찬성 의견은 50% 미만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선 민주당 전당원투표가 있은 직후인 작년 7월 29일~8월 1일, 한국갤럽이 여론조사(전화면접방식, 표본수 1230명, 95% 신뢰수준에서 ±2.8%)를 실시한 결과, 공천폐지 찬성이 60%, 폐지 반대가 23%로 나타났다. 이 추세는 4~5개월 동안 대개 60%선에서 이어졌다. 그러던 것이 해가 바뀌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1월 11~12일 MBC가 R&R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수 1000명, 유무선 혼합 방식, 95% 신뢰수준에 ±3.1%, 응답률 18%)를 보면, 폐지 찬성이 46.5%로 반대(35.4%)보다는 11.1%p 높게 나왔으나, 무응답 등 유보 의견도 18.1%나 나왔다.
한국갤럽도 1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여론조사(표본수 1208명,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2.8%)를 했는데, 응답자 49%가 폐지 찬성, 25%는 폐지 반대, 26%는 의견을 유보했다. 지지정당별로 폐지에 찬성한 응답자는 민주당이 50%였다. 작년 7월 전당원투표 때 민주당 당원은 67.7%가 폐지에 찬성했는데 반년 사이에 약 18%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최근 조사는 <일요신문> 조사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와 공동으로 신당 창당 발표가 있었던 지난 3월 2일 여론조사(표본수 1000명, 응답률 6.43%, 95% 신뢰수준에서 ±3.1%)를 실시했다. 이날 김한길 대표, 안철수 의원 양자는 무공천 합의를 발표했는데, 무공천 결정에 대해서 잘한 일이라는 의견이 51.5%, 잘못한 일이라는 의견은 25.0%,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23.5%였다. 신당 창당 발표 당일이었음에도 비교적 높지 않은 여론 지지도를 보여주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정당공천제도 장점이 있다
작년 7월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14% 더 많이 공천제 유지에 찬성 견해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20대에서 10% 가량 더 높은 공천 유지 견해를 나타냈다. 이는 정당공천제 폐지가 여성과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는 점에 더 공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 민주당 등 주요 정당들은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는 당헌당규에 여성의무 할당 또는 여성 배려 조항을 두고 있다. 역시 청년 배려 등 소수자 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정당공천이 없었던 1995년과 1998년 1~2회 지방선거에서 여성 기초의원은 나란히 1.6%에 불과했다. 2002년 3회 선거 때도 겨우 2.2%였다. 정당공천제가 생기고,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돼 대부분이 여성 당선자로 채워지자 2006년 4회 때는 15.1%로 급증한다. 국회의원 지역구에 여성후보자 1인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천해야 하는 조항을 신설한 2010년 5회 때는 또 21.7%로 점프한다. 정당공천제가 아니었다면 여성 지방의원의 수적 확대는 절대로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인의 등장이 손쉽다는 것은 토호세력이 그만큼 발붙이기가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업별로 보면 지방의 대표적인 토호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건설업자와 새마을금고 이사장이다. 1995년 제1회 선거 때는 이들의 비율이 10.5%였으나 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4회 선거 때는 이 비율이 6%로 급감한다.
학력을 봐도 비교가 된다. 학력이 낮아도 돈만 있는 사람들이 진출할 수 제도가 무공천 때였다면 정당공천제로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공천이 없던 1995년 1회 선거 때는 전문대 졸업 이상이 40.4%였으나 공천제가 생긴 2006년 4회 때는 대학 중퇴 이상이 59.6%로 늘어났고, 2010년 5회 때는 전문대 재학 이상이 74.1%로 급증한다. 결국 정당이라고 하는 필터링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진출을 활발하게 도와주고, 돈 많고 조직이 센 지역 토호세력의 지방의회 장악을 저지하는데 일정한 기능을 담당해온 정당공천제, 그냥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그것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공천제를 고집하고 있는데 제1야당만 스스로 전국적 통일 기호인 "2번"을 포기하고 선거에 임할 것인가?
필자는 앞서 민주당의 "기초선거 무공천 당론" 결정 과정이 작년 7월 24일 전당원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결정한 것과는 달리 국회의원들이 일방적으로 정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전혀 없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것이다.
이제라도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전당원의 의사를 모으는 노력을 기울이기를 충고한다. 민주당 전국대의원들의 절반이 무공천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절반의 대의원이 당원의 의견을 물어 재검토 방식을 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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