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어떤 말에 미국은 고개를 저었나

등록 : 2014.01.16 16:31 수정 : 2014.01.17 09:57

 

2006년 11월11일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라이스 국무장관(오른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하노이/청와대사진기자단

게이츠의 “약간 정신나갔다”에 앞서 라이스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
버시바우 “올바른 일을 그른 명분으로 시행”…모두 부시 밑에서 근무
노무현의 ‘한국, 미국-중국 균형자 역할론’이 ‘반미’ 인식 심어준 듯

2006~2011년 미국 국방 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 전 장관이 14일(현지시각) 발간한 회고록 <임무>(Duty)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약간 정신나갔다(crazy)”고 평가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전직 미국 고위당국자들이 회고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미국 일방주의와 네오콘적 성향을 보였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밑에서 근무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2011년 11월1일(현지시각) 시판된 회고록 <최고의 영예, 워싱턴 시절의 회고>에서 노 전 대통령을 두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이라고 묘사했다. 라이스는 “(노 전 대통령이) 나에게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하며 강의를 하는 등 반미적 모습을 시사하는 발언을 때때로 했다”고 전했다. 라이스는 2004년 7월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자격으로 노 대통령을 예방했는데, 이 자리에서의 노 전 대통령 발언을 거론한 것이다.

라이스의 발언을 보면, 부시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에 대해, 미국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중국과 가까이 지내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이는 곧 ‘효순·미선 촛불시위‘에 나타났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선입관과 합쳐져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라는 공식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평화·번영을 통한 남북관계의 구심력 확보’라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 정권 교체’에 집착했던 부시 행정부와 충돌했던 점도 미 당국자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라이스의 회고록 내용이 알려지자 노무현재단은 논평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라이스 전 장관의 (2004년) 면담은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한국의 대통령이 미·중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 자체가 탐탁치 않았거나 미·중 관계가 좋게 발전하기를 희망하는 바람이 라이스 전 장관의 일방주의 사고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며 비판한 바 있다.

또한 2010년 4월 한국어판으로 발행된 한-미 전직 대사 12명의 회고록 <대사관 순간의 기록>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올바른 일을 그른 명분으로 시행하곤 했다”며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문제를 한국의 주권 회복이라고 잘못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부임해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이임했다. 그의 말을 뜯어보면 전작권 이양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만, 한국이 주권 회복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은 거슬린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버시바우 전 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한국은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과 좀 더 조화를 이루면서 북한 정권의 잔인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를 갖게 됐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 대사도 같은 책에서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유일한 공통점은 나이(1946년생)와 국제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의 인사들이 겉으로는 노 전 대통령을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속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반기며 실리를 챙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이츠의 전임자인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2011년 2월8일(현지시각) 내놓은 회고록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럼즈펠드 장관은 2002년 12월 23일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정책차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한국 대통령 당선자(노 전 대통령)가 한·미 관계를 검토하길 원한다고 언급해 왔다.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면 한반도 불안을 일으킨다고 비난받았을 거지만,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며 “이제 양국관계를 재조정해 한국인들에게 부담을 넘겨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으로부터 상대적 독립성을 더 확보하려는 한국 정부의 전략을, 미국은 무기 판매 확대 등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온라인뉴스팀

한겨레 신문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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