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이 거짓이라고?
부림사건 법정은 '노변' 연출 따라 춤췄다
[반박] 부림사건 공판조서 작성자가 검사 고영주씨에게 답한다
14.01.16 13:29
최종 업데이트 14.01.16 13:29나는 부산의 현직 법무사로 영화 <변호인>의 30년 전, 그 법정에 실제 있었던 사람이다. 당시 만 29세이던 나는 소위 '부림사건'의 공판조서를 작성했다. 때문에 영화 <변호인>에 대한 소회가 남다르다.
'노변'에 대한 호불호는 지금도 사람마다 극명하게 나뉜다(이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변'이라 칭한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은 각자의 자유다.
그렇지만, 영화 속 실제 주인공들이 영화 내용의 실제 여부를 다투고 언론까지 이에 편승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림사건의 실체와 영화 속 장면들이 실제였는지, 허구와 실제와의 간극은 어느 정도인지에 의문을 갖는다. 더 나아가 용공조작으로 정의를 비껴간 국가기관들은 사과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산주의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미화시키는 시대의 난맥상을 경계해야 하는가? 란 물음으로까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던 고영주씨가 최근 <뉴데일리>에서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와 한 인터뷰 등에서 읽을 수가 있다. (이하 '고씨'라 칭한다)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1) 부림사건은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며 이것이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는 현실이 바로 조작된 역사다. 부림사건은 오늘의 종북세력 뿌리다.
2) 부림사건의 피의자중 1인은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주장하며 나에게까지 포섭 내지 협박을 시도했다.
3) 부림사건은 워낙 큰 사건이라 당시 부산지역 거물변호사들이 나섰기에 노무현이 그 일원인지 몰랐고 그는 신참이라 발언 기회도 없었다.
4) 고문 얘기는 재판 중에 처음 거론되었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특히 검찰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손 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5) 후일 강금실 법무장관이 나를 대검 공안부장에 앉히려는데 문재인이 비토하는 등 청와대로부터 보복 인사를 당했다.
6) 노무현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에 부림사건 관련자가 꽉 찼다.
이처럼 <변호인>을 둘러싼 논쟁이 이념 논쟁과 노변에 대한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졌다. 이에 당시 법정에 있었던 사람으로 몇 가지만 반박하고자 한다.
특히나 부림사건은 현재 재심 및 고문의 실재 여부를 가리고 있는 중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변호인>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한 주요 자료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현대정치사의 대형사건 이면에는 늘 이념 시비가 뒤따르므로 시비에 말릴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찾기에 일조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책무이기도 하기에 이 글을 쓴다.
존재감은 노변이 유일... "고문 흔적 보여드리겠다" 발언도
가. 부림사건은 거물 변호사들의 대거 참여로 노변은 존재감도 없어 참여 여부도 몰랐고 신참이라 발언 기회도 없었다?
사실 나는 거물 변호사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 부림사건에는 거물이라 지칭할 만한 변호사가 없었다. 실제로 노변은 <변호인> 속 송강호처럼 검사와 다투고 심지어 판사의 부당한 소송진행에 대해 거침없이 맞대응했다. 하지만 나머지 변호사들은 그저 다소곳이 형량 줄이기 변론에 급급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노변의 열띤 변론에 화가 난 판사가 변호인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른 변호사에게 머리를 들라고 지적한 것을. 그 변호사는 황급히 고개드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연출했다. 부림사건 법정에서 공판조서를 작성한 내 기억으로는, 존재감은 노변이 유일했고 법정 분위기도 노변의 연출(?)에 따라 춤추었다.
여러 달 이어진 '부림사건' 재판, 그 법정을 뜨겁게 달군 유일한 주인공인 노변이 기억 안 난다는 고씨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나. 고문 여부를 몰랐다?
나는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고문 사실을 밝혔는지, 검찰 송치 후에도 가혹행위를 당했는지 여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잡혀간 아들의 소재 파악조차 불가능했던 전두환 군사 정권의 시대 상황, 장기간의 구금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피고인들의 모습을 마주 앉아 봤을 텐데 가혹행위 여부를 몰랐다고 주장하는 고씨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변에 의해 고문 사실이 강조되자 방청석에서 탄식과 눈물을 쏟아낸 법정 정경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노변이 "지금 이 법정에서라도 고문 흔적을 보여드리겠다"며 나서자 판사가 황급히 저지시키는 희극도 있었다. 물론 피고인들의 신체를 살펴보자는 검증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 '부림사건'의 피의자가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주장하였고 공안검사까지 포섭 내지 협박을 시도하였다?
피의자가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며 검사를 겁박한다고 할 때 담당검사의 심정은 어떨까? 나 같으면 제대로 된 공산주의자를 만났다는 확신과 함께 후일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피의자와의 논쟁을 조서에 생생하게 옮기는 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피의자 스스로 공산주의 사회의 필연적 도래를 외치는 진술만큼 중요하고 명쾌한 증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피의자 신문조서가 존재하는가? 법정에서는 그 내용으로 해당 피고인과 논쟁 벌인 일도 없다. 없었기에 공판조서에도 없다(고씨는 그 피의자는 이미 사망했다고 한다).
부림사건 변호인단에 문변은 없었다
라. 강금실 법무장관이 나를 대검 공안부장에 앉히려는데 문재인이 비토하는 등 나(고영주)는 청와대의 유일한 비토대상이었다?
고씨의 이 주장은 차라리 노변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나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만약 노 대통령이었다면 그토록 자신을 분노케 했던 검사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이 나라 검찰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고영주씨는 부림사건 이후 노 대통령 시절에 대검 감찰부장과 검사장까지 지냈다. 그런 고씨가 비토대상 또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불평에 누가 수긍하겠는가?
나는 강금실씨와도 같은 재판부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런 분이 부림사건의 실체를 알면서 그런 인사를 시도했는지, 그리고 문재인씨가 비토했는지도 궁금하다. 이는 강금실씨가 밝혔으면 좋겠다.
마. 노변이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에 '부림사건' 관련자가 꽉 찼었다?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권한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엄청나게 많다. 청와대 직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와대 직원의 숫자는 얼마이며 청와대에 근무했던 부림사건 관련자는 몇 명이나 되었기에 고씨는 꽉 찼었다고 표현할까?
바. 이번 인터뷰 이전에 <조갑제닷컴>의 대담에서 고씨는 "공산주의운동인 부림사건을 노변과 문재인 변호사 두사람이 변호하면서 이들과 인맥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베(일간베스스저장소) 회원들이 '문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면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며 호응했다는데 과연 옳은가?
애초에 부림사건에 '문변(문재인 변호사)'은 없었다. 변호인단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부림사건에서 노변을 잘 관찰했고 문변은 '동의대 입시부정사건'을 통해 잘 관찰했다. 결론적으로 두 분 다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문변이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지가 벌써 30년, 그를 공산주의 색깔로 덮으려는 것은 한참 잘못된 시도다.
부림사건의 공소장 분량은 꽤 방대하다. 대부분의 범죄사실은 '피고인 아무개는 0년 0월 0일 ** 에서 **와 함께 00가 지은 000란 책을 읽고 000라고 말했다'는 류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모여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소위 '의식화' 운동의 일환이고 이것은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책들이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심지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과 기타 난해한 인문서로 당시 시중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변혁 프로세스로 그런 책부터 읽는다고 하며 '모르면 아무 소리 말라'면 입을 다물겠다. 이 시대 종북뿌리가 되었다는 주장에도 아무 말 않겠다. 나는 이념 전문가가 아니니까.
노변과 함께 법정 뒤흔든 피고인들의 고함
<변호인>의 법정 장면은 실제와 비교적 유사하다. 다른 점은 <변호인>은 온통 노변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실제는 피고인들도 대단했다는 것이다. 즉, 피고인들은 그저 고개만 떨군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무죄를 다투었다. 어떤 때는 처절한 항의가 노변의 저돌적인 용기와 고함으로까지 이어져 법정 안을 온통 뒤흔들기도 했다.
당시 법정 분위기는 늘 싸늘하였다. 방청도 제한됐고 정보형사나 기관원들이 재판 과정을 내내 지켜보았다. 그런 가운데서의 노변의 변론은 가끔씩 흥분이 지나쳐 주제를 벗어나 조바심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인> 속의 송강호처럼 법정에서 정의롭고 용기있게 행동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30년 전의 '부림사건'이 <변호인>이란 영화가 기폭제가 되어 실체적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노변'에 대한 호불호는 지금도 사람마다 극명하게 나뉜다(이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변'이라 칭한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은 각자의 자유다.
그렇지만, 영화 속 실제 주인공들이 영화 내용의 실제 여부를 다투고 언론까지 이에 편승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림사건의 실체와 영화 속 장면들이 실제였는지, 허구와 실제와의 간극은 어느 정도인지에 의문을 갖는다. 더 나아가 용공조작으로 정의를 비껴간 국가기관들은 사과해야 하는가? 아니면 공산주의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미화시키는 시대의 난맥상을 경계해야 하는가? 란 물음으로까지 묵직하게 다가온다.
▲ 고영주 부림사건 검사가 <뉴데일리>와 한 인터뷰. 제목이 <'변호인'은 거짓! 노무현, 법정변론 서열도 아냐!>이다. | |
ⓒ 뉴데일리 |
그것은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던 고영주씨가 최근 <뉴데일리>에서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와 한 인터뷰 등에서 읽을 수가 있다. (이하 '고씨'라 칭한다)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1) 부림사건은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며 이것이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는 현실이 바로 조작된 역사다. 부림사건은 오늘의 종북세력 뿌리다.
2) 부림사건의 피의자중 1인은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주장하며 나에게까지 포섭 내지 협박을 시도했다.
3) 부림사건은 워낙 큰 사건이라 당시 부산지역 거물변호사들이 나섰기에 노무현이 그 일원인지 몰랐고 그는 신참이라 발언 기회도 없었다.
4) 고문 얘기는 재판 중에 처음 거론되었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특히 검찰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손 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5) 후일 강금실 법무장관이 나를 대검 공안부장에 앉히려는데 문재인이 비토하는 등 청와대로부터 보복 인사를 당했다.
6) 노무현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에 부림사건 관련자가 꽉 찼다.
이처럼 <변호인>을 둘러싼 논쟁이 이념 논쟁과 노변에 대한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졌다. 이에 당시 법정에 있었던 사람으로 몇 가지만 반박하고자 한다.
특히나 부림사건은 현재 재심 및 고문의 실재 여부를 가리고 있는 중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변호인>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한 주요 자료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현대정치사의 대형사건 이면에는 늘 이념 시비가 뒤따르므로 시비에 말릴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찾기에 일조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책무이기도 하기에 이 글을 쓴다.
존재감은 노변이 유일... "고문 흔적 보여드리겠다" 발언도
가. 부림사건은 거물 변호사들의 대거 참여로 노변은 존재감도 없어 참여 여부도 몰랐고 신참이라 발언 기회도 없었다?
사실 나는 거물 변호사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 부림사건에는 거물이라 지칭할 만한 변호사가 없었다. 실제로 노변은 <변호인> 속 송강호처럼 검사와 다투고 심지어 판사의 부당한 소송진행에 대해 거침없이 맞대응했다. 하지만 나머지 변호사들은 그저 다소곳이 형량 줄이기 변론에 급급했다.
▲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
ⓒ 위더스필름 |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노변의 열띤 변론에 화가 난 판사가 변호인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른 변호사에게 머리를 들라고 지적한 것을. 그 변호사는 황급히 고개드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연출했다. 부림사건 법정에서 공판조서를 작성한 내 기억으로는, 존재감은 노변이 유일했고 법정 분위기도 노변의 연출(?)에 따라 춤추었다.
여러 달 이어진 '부림사건' 재판, 그 법정을 뜨겁게 달군 유일한 주인공인 노변이 기억 안 난다는 고씨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나. 고문 여부를 몰랐다?
나는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고문 사실을 밝혔는지, 검찰 송치 후에도 가혹행위를 당했는지 여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잡혀간 아들의 소재 파악조차 불가능했던 전두환 군사 정권의 시대 상황, 장기간의 구금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피고인들의 모습을 마주 앉아 봤을 텐데 가혹행위 여부를 몰랐다고 주장하는 고씨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변에 의해 고문 사실이 강조되자 방청석에서 탄식과 눈물을 쏟아낸 법정 정경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노변이 "지금 이 법정에서라도 고문 흔적을 보여드리겠다"며 나서자 판사가 황급히 저지시키는 희극도 있었다. 물론 피고인들의 신체를 살펴보자는 검증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 '부림사건'의 피의자가 공산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주장하였고 공안검사까지 포섭 내지 협박을 시도하였다?
피의자가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며 검사를 겁박한다고 할 때 담당검사의 심정은 어떨까? 나 같으면 제대로 된 공산주의자를 만났다는 확신과 함께 후일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피의자와의 논쟁을 조서에 생생하게 옮기는 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피의자 스스로 공산주의 사회의 필연적 도래를 외치는 진술만큼 중요하고 명쾌한 증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피의자 신문조서가 존재하는가? 법정에서는 그 내용으로 해당 피고인과 논쟁 벌인 일도 없다. 없었기에 공판조서에도 없다(고씨는 그 피의자는 이미 사망했다고 한다).
부림사건 변호인단에 문변은 없었다
라. 강금실 법무장관이 나를 대검 공안부장에 앉히려는데 문재인이 비토하는 등 나(고영주)는 청와대의 유일한 비토대상이었다?
고씨의 이 주장은 차라리 노변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나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만약 노 대통령이었다면 그토록 자신을 분노케 했던 검사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이 나라 검찰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고영주씨는 부림사건 이후 노 대통령 시절에 대검 감찰부장과 검사장까지 지냈다. 그런 고씨가 비토대상 또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불평에 누가 수긍하겠는가?
나는 강금실씨와도 같은 재판부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런 분이 부림사건의 실체를 알면서 그런 인사를 시도했는지, 그리고 문재인씨가 비토했는지도 궁금하다. 이는 강금실씨가 밝혔으면 좋겠다.
마. 노변이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에 '부림사건' 관련자가 꽉 찼었다?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권한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엄청나게 많다. 청와대 직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와대 직원의 숫자는 얼마이며 청와대에 근무했던 부림사건 관련자는 몇 명이나 되었기에 고씨는 꽉 찼었다고 표현할까?
바. 이번 인터뷰 이전에 <조갑제닷컴>의 대담에서 고씨는 "공산주의운동인 부림사건을 노변과 문재인 변호사 두사람이 변호하면서 이들과 인맥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베(일간베스스저장소) 회원들이 '문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면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며 호응했다는데 과연 옳은가?
애초에 부림사건에 '문변(문재인 변호사)'은 없었다. 변호인단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부림사건에서 노변을 잘 관찰했고 문변은 '동의대 입시부정사건'을 통해 잘 관찰했다. 결론적으로 두 분 다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문변이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지가 벌써 30년, 그를 공산주의 색깔로 덮으려는 것은 한참 잘못된 시도다.
부림사건의 공소장 분량은 꽤 방대하다. 대부분의 범죄사실은 '피고인 아무개는 0년 0월 0일 ** 에서 **와 함께 00가 지은 000란 책을 읽고 000라고 말했다'는 류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모여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소위 '의식화' 운동의 일환이고 이것은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책들이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심지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과 기타 난해한 인문서로 당시 시중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변혁 프로세스로 그런 책부터 읽는다고 하며 '모르면 아무 소리 말라'면 입을 다물겠다. 이 시대 종북뿌리가 되었다는 주장에도 아무 말 않겠다. 나는 이념 전문가가 아니니까.
노변과 함께 법정 뒤흔든 피고인들의 고함
▲ 5.18 민주항쟁 이후 신군부에 의한 용공 조작사건 가운데 하나인 '부림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을 청구한 사건 연루자들이 지난 2009년 8월14일 부산지법에서 판결결과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변호인>의 법정 장면은 실제와 비교적 유사하다. 다른 점은 <변호인>은 온통 노변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실제는 피고인들도 대단했다는 것이다. 즉, 피고인들은 그저 고개만 떨군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무죄를 다투었다. 어떤 때는 처절한 항의가 노변의 저돌적인 용기와 고함으로까지 이어져 법정 안을 온통 뒤흔들기도 했다.
당시 법정 분위기는 늘 싸늘하였다. 방청도 제한됐고 정보형사나 기관원들이 재판 과정을 내내 지켜보았다. 그런 가운데서의 노변의 변론은 가끔씩 흥분이 지나쳐 주제를 벗어나 조바심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인> 속의 송강호처럼 법정에서 정의롭고 용기있게 행동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30년 전의 '부림사건'이 <변호인>이란 영화가 기폭제가 되어 실체적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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