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외압 폭로' 권은희, 총경 승진 탈락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영향 미친 듯... 시민단체 "치졸한 보복"
14.01.10 00:36
최종 업데이트 14.01.10 00:59▲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김용판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앞)이 국정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
ⓒ 유성호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에서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권은희 수사과장이 총경 승진 인사에서 결국 탈락했다. 고시 출신들이 총경까지는 대부분 무난히 승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권 과장의 탈락은 이례적이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당장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정권의 치졸한 보복과 탄압"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경찰청은 9일 경찰청 홍보 곽병우 경정 등 89명에 대한 총경 인사를 단행했다. 경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개인의 업무성과, 직무수행능력 뿐 아니라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청렴성, 도덕성 등까지 일선 기관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꼼꼼히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청문회가 낳은 '스타' 권은희, 경찰 지휘부엔 '뜨거운 감자'
그러나 경찰이 발표한 총경 승진 예정자 명단에서 권은희 과장의 이름은 없었다. 권 과장은 올해 총경 승진에서 탈락하면 계급정년을 맞게 된다. 그는 다음 승진에서도 탈락하게 되면 4년 뒤에는 퇴직해야 한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권은희 과장의 총경 승진 여부가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경찰 윗선 개입'을 폭로해 '스타 경찰'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권 과장은 국회 청문회 등에서 "경찰 윗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부정한 목적으로 수사를 축소·은폐했다"고 폭로해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의 송파경찰서 사무실에는 시민들이 보낸 선물과 화분이 쇄도했고, 고등학생들이 방문해 권 과장과 경찰관들에게 빵 100개를 돌리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또한 실명 인증을 거쳐야 글을 쓸 수 있는 송파경찰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무려 2400여 개의 격려 메시지가 쏟아졌다.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의 청원 게시판에도 권은희 과장을 응원하는 청원 5개가 올라와 수만 명의 누리꾼들이 동참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반면 경찰 지휘부의 속내는 복잡했다. 권 과장의 외압 폭로에 대해 "경찰조직을 해쳤다"며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했지만, 당장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에도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 과장을 인사 조치했다가 오히려 경찰 지휘부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경찰은 지난해 4월 권 과장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며 감찰을 시사했지만,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진상조사를 중단했다.
당시 송파경찰서 자유게시판에는 권 과장에 대한 인사 불익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경찰 지휘부가 만에 하나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 과장을 인사 조치한다면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과 경찰의 축소·은폐 시도에 성나있는 국민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민진홍씨)
"부디 경찰 스스로가 '견찰'로 신세 하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신재연씨)
특히 경찰 지휘부의 고민은 권 과장의 승진을 앞두고 더욱 깊어졌다. 권 과장은 사법연수원 33기로, 지난 2005년 특별채용을 통해 경정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경찰청 법무과를 거쳐 서초·수서·송파서 수사과장을 지냈다. 각종 경제사범이 몰리는 서울 강남권의 수사과장은 경찰 조직 내에서도 요직으로 꼽힌다. 게다가 고시 출신 경찰들이 대부분 총경까지 승진한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그의 총경 승진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끝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권 과장이 경찰 조직에 불명예를 안겼다고 판단한 경찰 지휘부가 결국 그를 승진 대상에서 탈락시킨 셈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권은희 과장도 승진 대상자였는데, 이번에는 포함이 안 됐다"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권 과장이 총경 승진에서 탈락함에 따라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도 예상된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권 과장의 승진 누락에 대해 "누가 보더라도 치졸한 보복이고 탄압"이라고 성토했다. 안 처장은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사람이라면 채동욱이든, 권은희든 누구라도 부도덕하게 찍어내고 불익을 주고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그러면 그럴수록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은 커져간다"며 "두고 봐라.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와 경찰에 대한 심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김현 민주당 의원도 "권 과장이 진실을 밝히려는 것에 대해 경찰이 계속 은폐하고 불익을 줘 왔다"며 "그의 공을 공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경찰 지휘부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면 경찰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는데, 권은희 과장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새롭게 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강제 진입 작전 책임자들, 무더기 승진 논란
이날 경찰이 발표한 총경급 간부 23명의 경무관 승진자 중에 지난달 22일 민주노총 및 철도노조 강제 진입 작전 책임자들이 다수 포함된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 강제 진입 작전에 참여한 뒤 이번에 승진한 경찰 고위직 인사는 정보·경비·수사를 책임지던 박건찬 경찰청 경비과장과 이용표 정보3과장, 송갑수 서울경찰청 경비1과장과 이철구 수사과장, 김양수 정보2과장이다. 서울경찰청 수사부와 정보 파트는 철도노조 지도부 수사 및 소재 파악을 위한 정보 취합을 전담하고 있고, 경비부는 진압 작전 당시 건물 진입과 안팎 경비 등을 맡았다.
이들 고위 간부들은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경향신문 건물에 진입하는 작전을 감행하고도 정작 지도부 검거에 실패했지만, 이번 승진 인사에서 무더기로 포함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경찰은 지난달 말 치안감 승진 인사에서도 이번 작전의 책임자였던 이상식 경찰청 정보심의관과 서울경찰청 김양제 기동단장, 정해룡 수사부장을 승진시켜 비판을 받았다.
영남권에서 경무관 승진내정자가 타 지역보다 2배 이상 많이 나온 것도 특정지역 쏠림현상이라는 지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출신 지역별로는 영남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충청 5명, 서울·경기 4명, 호남 4명 등 순이다.
경찰은 "민생치안의 최일선에서 '4대악 근절' 등 주요 국정과제를 적극 추진해 온 지역치안 책임자 등을 승진과 연계했다"며 "앞으로 총경 이하 후속인사를 조속히 마무리해 인사로 인한 치안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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