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7 15:51수정 : 2014.04.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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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52
‘무인기 침투’ 경계 실패한 지휘관들에 책임 안 물어
예산 타령·자리지키기만 급급한 별들…안보구멍 키워
이상한 나라입니다. 더 기이한 정부입니다. 안보 무능과 외교적 나태 속에서 국가의 안위가 위태로워지는데도 여론조사에선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국정 운영이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고무됐는지, 당신은 국가 안보에 난 구멍을 키우고, 외교적 실패로 주변 정세를 불안케 하는 자들을 감싸고 돕니다. 그런 남자들은 당신의 치마폭에 숨어 쥐처럼 작은 눈을 반짝이며 눈치만 살핍니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를 놓고 친정부 매체들은 나라가 결딴날 것처럼 벌써 일주일째 난리 북새통입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글라이더를 개량한 수준이라는데 마치 얼마지 않아 미국의 드론처럼 치명적인 살상무기로 둔갑하기라도 할 듯이 오두방정입니다. 가능성만을 놓고 보면 우리의 비행 유도체 제작 기술은 북한보다 월등합니다. 굳이 그런 정찰용 무인기를 제작할 필요가 없어 시도를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더 희한한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무인기가 청와대 방공망을 침투하고, 전국의 주요 군사시설을 맴돌도록 방치한 자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건 군의 철칙입니다. 보초를 서다 졸면 영창으로 직행하는 게 사병입니다. 저들의 말대로 조금 개량만 하면 대통령이 탄 자동차를 자살폭격 할 수도 있다는데, 그 대장 출신들을 징치하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습니다. 하긴 대통령이 아무 말도 없으니, 친정부 매체들이 무슨 말을 할까요.
천안함 침몰 때도 그랬으니 일관성은 있어 보입니다. 북한의 반잠수정이 우리 영해로 잠입해 쏜 ‘버블제트 어뢰’ 때문에 폭침했다고 선언하고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 상황 파악도 못했다는 해군 및 합참 관계자들은 자리 보전을 했죠. 당시는 한미 연합군의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무겁게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판이었죠.
혹시 성능이 조금 개량됐지만 레저용 무인 비행기 수준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건지, 그래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위기감을 부추겨 여당 선거운동에 나서는 친정부 매체들의 장난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건 그런 까닭입니다. 전사에 길이 남을 치욕의 천안함 사건을 정치 계절만 돌아오면 열심히 울궈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청와대 경호실은 무능 여부를 떠나 은폐 시도까지 하려 했다죠. 무인기가 북한제라는 분석이 나오자 경호실에선 속단하지 말라고 발끈하며 입을 막으려 했죠. 백령도에서 한 대가 더 추락하고,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안위를 지켜야 할 자들이, 저희들 자리를 지키는 데 혈안이었으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집안 꼴이 이 모양이니 숨죽이며 눈치나 보던 책임자들이 언제부턴가 예산 타령으로 돌아섰습니다. 사실 그런 작은 비행체는 미군의 첨단 레이더로도 감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고도 비행체 탐지 시스템이 없어서 그랬다나요? 그러니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나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군이 장비와 예산 타령을 했던 게 생각납니다. 지휘 책임을 불문에 부치는 것이 관행이 되다보니, 장비 혹은 예산에 책임을 돌리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나 봅니다. 잘못 저지르면 으레 엄마 치마폭에 숨어, 오히려 칭얼대는 버릇 나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결코 그렇게 관대한 성품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신은 마음에 안 들면 전광석화처럼 경질시키곤 했죠. 지난해 7월 남북 개성공단 정상화 회담에 나섰던 서호 단장이 3차 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경질됐습니다. 태도가 고압적이지 못했다는 게 경질 배경으로 알려졌습니다. 서 단장이 회담장에서 북한 쪽 대표와 만면에 웃음을 짓고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엔 청와대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사관에 천해성 통일부 정책실장을 내정했다가 일주일만에 경질해 버렸죠. 이 ‘사건’ 역시 지난해 6월 천 실장이 대표로 나선 남북 장관급회담 예비접촉에서 분위기를 너무 화기애애하게 끌고 간 것이 문제였던 것 아니냐고들 수군댔습니다. 그런 인사는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의 백미였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건 그런 태도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싸울 땐 싸우고 협상할 땐 협상해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싸우려고만 듭니다. 그렇다고 싸움을 잘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최고 지휘관들은 나사가 풀려 있고, 통수권자는 그들을 금지옥엽으로 감싸고 있으니, 어떻게 나라를 잘 지키겠습니까.
그건 정상외교로도 연장되었습니다. 지난달 26일 한미일 정상회담 때 아베 일본 수상은 ‘반갑스므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했습니다. 그때 당신은 눈을 내리깐 채 아예 무시해버렸죠. 국제관계에선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습니다. 적국과도 나눌 건 나누고, 우방과도 따질 건 따져야 합니다. 그 일이 있고 불과 열흘 만에 일본에선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린 초등학교 교과서가 배포됐습니다.
불법 점유? 북한도 북방한계선 이남의 도서를 남쪽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교과서를 보고 배운 일본 학생들이 장차 한국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려 할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이들이 크면 한국에 뺐긴 땅을 되찾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군사적으로라도 원상회복하겠다고 하겠죠. 이제 서쪽의 북방한계선처럼 독도 역시 위험천만한 ‘분쟁 지역’이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입니까.
아베 수상의 일본이 아무리 천둥벌거숭이처럼 튀더라도, 한일관계를 관리할 책임은 우리 정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아베 수상의 한국말 인사를 걷어차버린 것은 잠시 당신이나 지지자에게 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순간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 수상에게 버르장머리 운운했다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을 때 일본은 한국 쪽의 지원 요청을 매정하게 외면했습니다.
설혹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일본 정부가 오른쪽 극단으로 두 걸음 나갈 것을 한 걸음으로 그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정부입니다. 밉다고 대놓고 침 뱉는 건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할 일입니다. 당신의 그런 모습에 흥분한 한 지지자는, 이 판에 일본과 한바탕 붙어보면 어떨까라고 하더군요.
당신의 ‘외교적 포퓰리즘’은 국내용으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나라는 갈수록 어렵고 위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요. 엎질러진 물이지만 빨리 닦아내야 합니다. 그러자면 치마 뒤에 숨은 당신의 남자들부터 정리하십시요. 별 넷씩이나 달았던 사람들이 책임질 때 지지도 않고, 눈치만 보며 국가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데, 이들부터 스스로 명예를 지키도록 해야 할 겁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