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이미 늦었다
석가탄신일 '간접 사과' 재탕에 야권 공세 본격화... "특검·국정조사 해야"
14.05.06 18:16
최종 업데이트 14.05.06 20:50▲ 합장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봉축 법요식에서 축사에 앞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 |
ⓒ 이희훈 |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대통령으로서 어린 학생들과 가족을 갑자기 잃은 유가족들께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두 번째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지난 2일 열린 종교인 지도자 간담회에서 예고했던 '대국민사과'는 아니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 사람이라도 더 실종자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또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고, 대안을 갖고 앞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불기 2558년 석가탄신일인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라며 밝혔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사과 내용을 봉축메시지 중 일부로 넣은 셈이다.
다시 말해 사고 발생 14일 만에 국무회의 석상에서 참모들을 앞두고 했던 '간접 사과'와 별반 차이는 없는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진정성 논란이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기를 놓쳤다.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도입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등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도 전에 쟁점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시작일 뿐"
박 대통령의 이번 봉축법요식 참석은 역대 대통령 중에선 처음이다. 이번 행사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취지로 마련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해석'이 붙었다. 박 대통령의 영가등(죽은 사람,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다는 등)도 전날(5일)부터 내걸렸다. 여기에는 '세월호 희생자 무량수 무량광 극락정토 왕생발원'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목숨이 끝이 없고 빛이 끝이 없어서 번뇌 없는 세상에 다시 오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특별히 올해 봉축법요식을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리로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세월호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받고 계신 유가족들께 부처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지도자로서의 다짐도 밝혔다. 그는 "이번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국가정책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오랜 세월동안 묵인하고 쌓아왔던 잘못된 관행과 민관 유착, 공직사회의 문제 등을 바로 잡고,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아서 바르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고자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무엇보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사과는 시작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가안전처 등의 즉흥적 대처를 내놓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해서는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 조계사 법요식 참석한 정당 대표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봉축 법요식에 각 정당 대표들이 참석 하고 있다. 오른쪽 부터 김한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천호선 정의당 대표. | |
ⓒ 이희훈 |
▲ 세월호 특검 도입 ▲ 국회 상임위 차원 청문회 실시 ▲ 국정조사 실시 ▲ 여야정 및 시민사회 참여하는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가칭)' 설치 등 구체적인 제안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이해한다면 정부 차원의 '셀프대책' 마련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라며 "정부는 국회가 주도하는 범국가적 위원회의 결론을 수렴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조직개편 역시 국회가 입법을 통해 결론을 낼 일"이라며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구상을 맞받았다.(관련기사 : 박근혜 "단단히 마음 잡고 국가 개조하겠다"
)
아울러 김 대표는 "장관 몇 명 갈아치우는 것만으로 책임을 물었다고 할 수 없다"라며 "유가족과 국민이 원한다면 특검을 포함한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고려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4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 대부분을 처리한 만큼 5월 국회는 4.16 참사(세월호 침몰사고)를 다루는 국회가 돼야 한다"라며 "상황 수습이 끝나는대로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도 가능할 것이다, 지방선거 때문에 국회를 닫아야 한다는 발상은 국민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4.16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6월 국회에서 원구성이 완료되지 않아도 국정조사 특위를 구성하는 데는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6월 중 예정된 국감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야·정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범국가적 위원회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 구성을 위한 입법도 있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청문회·국정조사 등 수습 후 모든 상황을 국회 주도로 이끌어가겠단 주장이다.
안 대표는 "정부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난 이상 지금은 국회가 역할을 다해야 한다, 관료 카르텔을 타파하고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기득권을 물리쳐야 한다"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국민적 애도기간을 감안해 '상황수습'에 방점을 찍어왔던 야권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선 셈이다.
희생자 가족 요구사항, 무시 하기 어려울 듯
새누리당은 이에 "광주시장 전략공천에 따른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정략적 공세"라고 일축하고 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세월호 사고 관련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는 등 사고수습에 집중하고 사고를 당한 가족들을 보듬는 일보다 이번 사고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공세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야권을 비판했다.
또 그는 "혹여나 일부 세력이 정부와 대통령을 흔들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부추기는 등 이번 사고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야권의 요구를 일축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설사 박 대통령이 '대안 마련'을 이유로 미뤄뒀던 대국민사과에 나서더라도 상황을 비슷할 듯하다.
▲ 세월호 유가족 "제 아이가 웃을 수 있게 진실을 밝혀주세요"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5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과 정부의 철저한 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사흘째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
ⓒ 유성호 |
일단,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전날(5일) 오전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 출구에서 특검 도입 및 청문회 개최를 관철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중이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도 이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에서 이를 무시하기 힘들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세월호 진상규명 특검은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새누리당은 유가족들과 국민 대다수의 요구를 정략적 정치공세라고 비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여당의 국정장악력도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202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전화면접 및 자동응답전화 유무선 임의걸기 병행,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2.2%p),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긍정평가는 52.9%였다. 이는 세월호 참사 후 2주 간 11.8%p 하락한 수치다.
6.4지방선거 상황도 변수 중 하나다. 여당 내에서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민심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각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야권의 요구를 일축하면 자칫 더욱 세월호 참사에 따른 심판론 구도가 굳혀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사고 수습 후 대국민사과를 하더라도 새 국무총리 등을 인사해야 할 텐데 여기서 실패하면 또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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