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월경독서>를 펴낸 목수정 작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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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지난해 6월, 그가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 초경을 시작한 여중생 때 만났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부터 21살 뮌헨행 기차에 함께 올라탔던 장 그르니에의 <섬>, "독이 온몸으로 퍼지는 아픔"을 선사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모두가 해방"되는 세계를 만들려고 했던 이사도라 던컨의 <이사도라 던컨>까지 그의 삶과 함께 했던 책들을 다시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다시 더듬어 보는 동안 대선은 막을 내렸다.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리고 한국 사회의 48%는 '멘탈 붕괴'의 상태로 치달았다. 회복하기 힘들 것만 같았다. 한국과 프랑스 파리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그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1주일 동안 울었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최근 펴낸 <월경독서>(생각정원)는 그 위로와 성찰의 결과물이다.
멈추지 않는 촛불을 보고 "눈물겨웠다"
▲ <월경독서>를 펴낸 목수정 작가 인터뷰 최근 <월경독서>를 펴낸 목수정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를 참가하며 느낀 소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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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라는 아주 인상적인 책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작가 목수정(44)씨가 <월경독서>의 서문을 쓸 무렵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켜졌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에 항의하는 촛불이었다. 때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잠시 귀국한 목씨도 꼬박꼬박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지난 16일 서울 합정역 근처에서 만난 그는 멈추지 않은 촛불에 무척 상기돼 있었다.
"한국에 와서 매주 촛불집회에 나갔다. 갈 때마다 더 더워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들이 안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왔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때는 뒤엎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루어낸 게 없었다. 그 아픈 기억 때문에 촛불집회에 안올 수 있는데, 해봤자 안되더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왔다. 날씨는 덥고 상황은 암울한데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눈물겨웠다."
목씨는 멈추지 않는 촛불을 보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서 "프랑스는 혁명의 세기가 한참 지나고 그것이 이제는 멈추어서 여름이 되어도 땀을 흘리지 않는데 대한민국은 이렇게 더운데도 땀을 흘리면서 새롭게 생의 투쟁을 형성하는 역동적인 나라구나" 하는 것을 강렬하게 체험했다. 그렇게 "반복되어도 식지 않는 촛불"을 보면서 느낀 감동은 <월경독서>의 서문에 고스란히 아로새져졌다.
"투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는 경험이 반복된다 해도, 굴종에 길들여지지 않은 영혼들은 언제나 정의를 짓밟는 세상을 향해 창을 던질 터. 기울어진 달이 다시 꾸역꾸역 차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해도, 언제나 다시 떠나는 여행자처럼."(본문 6쪽)
이는 목씨가 직접 번역한 스테판 에셀의 저서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에서 얻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 레지스탕스'로 불리우는 스테판 에셀은 외교관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뒤 <분노하라> 등의 책을 써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프랑스 등에서 호평받은 <분노하라>(2010년)에는 '인권선언에 명시된 가치들을 정부와 기업들이 침해할 때 분노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스테판 에셀의 책을 번역하면서 굉장히 좋은 메시지를 얻었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실패로 끝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할 일을 했다고 스스로 위로하라.' 그것이 중요하다고 스테판 에셀은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박근혜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씨가 촛불의 현장에서 온전히 감동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통합당과 일부 진보세력이 내걸고 있는 '깃발'에 깊은 절망감을 나타냈다. 이들이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단상 위에서 외치는 것이랑 그 아래에서 얘기하는 것이랑 아주 달랐다. 단상 위에 있는 국회의원 등 명망가들과 일부 좌파들은 박근혜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무도 박근혜의 반성이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대방을 비방만 해도 당선이 무효된다. 그런데 지난 대선 과정에 어마어마한 선거부정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선거를 치르기를 원한다. 2008년 촛불 때는 광우병 소고기를 수입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명박 물러가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구호가 없다."
▲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단 초청 오찬에 참석 중인 박근혜 대통령. | |
ⓒ 청와대 |
그런 생각이 강해서인지 목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와 관련해 흥미롭고 인상적인 일화가 있었다. 한국에서 시국선언이 시작되자 그도 프랑스 파리에서 시국선언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프랑스에는 외국의 이슈와 관련해 서명운동을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서명을 올리기 위해 관리자에게 '올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관리자가 서명서를 읽어본 뒤 '부정선거를 했다면서 왜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표기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가 당신들의 주장이 아니라 검찰조사 결과로 드러났다면 그것은 절차만 안밟았을 뿐이지 선거무효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빼고 '마담 박근혜'라고 하자'고 제안했다."
목씨는 "2008년 대선 때는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지금은 '박근혜'라고 안부르고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며 "왜 이명박보다 박근혜를 더 무서워하나?"라고 꼬집었다. 그는 "진짜 이상하다"라며 "한국은 공포의 극약이라도 먹었나"라고도 했다. 좀 과격해 보이는 그의 비판적 발언은 박근혜 정부를 '유신체제의 부활'로 보는 시각을 연상시킨다.
"촛불시민들이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읽기를..."
▲ 최근 <월경독서>를 펴낸 목수정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집필한 책에 대해 "(독자들이)책에 언급된 책을 읽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을 만들어준 책을 (다시)읽기 바란다. 그 책들이 주는 울림을 다시 들으면서 신발끈을 조였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 |
ⓒ 유성호 |
여러 가지 절망에도 목씨는 '촛불의 낙관주의' 쪽에 서 있다. 그는 "2008년 촛불 때 만들어진 시민들의 비판적 시각, 의식화로 인해 언론 마피아 조중동, 법률 마피아 김앤장, 재벌 마피아 삼성 등 썩은 곳에 눈을 뜬 사람들이 많다"며 "원세훈-김용판 동행명령장 집행 등도 지금의 촛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권은 그 촛불시민의 변화에 걸맞게 진화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목씨는 "촛불집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테판 에셀의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를 권하고 싶다고 했다. 스테판 에셀은 지난 3월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그는 직접 실천한 행동과 말로 젊은이들에게 실용적인 삶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증언을 남겼다"고 그를 기렸다.
"스테판 에셀은 95세까지 충만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는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세상의 지축을 옮기는 힘이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촛불을 드는 순간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축이 된다. 승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싸운다. 2008년 촛불 때 이루어낸 정신적 고양을 통해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것은 굉장히 큰 일이다. 외교관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인권운동을 벌였던 스테판 에셀은 실패가 결코 자신을 좌절시키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만 투쟁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야만 역사 속에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씨는 "인류에게는 잔인한 공격성이 있지만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본능도 있는데 그것을 지성, 양심이라 부른다"라며 "세상이 정글로 바뀌지 않게 하려면 인류의 또다른 본능인 정의와 자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계속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목소리를 낼 수 있기 위해서는 '생각과 표현의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로지 정치부분에서의 개혁으로, 우린 결코 새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없다. 작가이자 프랑스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말했듯이 '문화가 여분의 무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투쟁자를 부를 수 있어서가 아니라 문화가 다양한 사고와 표현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생각과 표현의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는 모든 독재의 최후는 그것이 좌건 우건 결국 같은 모순에 목을 조이고 만다. 자본의 독재, 이데올로기의 독재, 군사 독재는 결국 같은 최후, 같은 뒷말을 남기지 않던가."(본문 32쪽)
"반지성화 작업이 사회 전체로 유포되고 있어" 세상과 한국 사회를 향한 '목수정 인터뷰 어록' |
"대한민국은 이렇게 더운데 투쟁하는 나라구나. 여전히 땡볕에서 오이 하나, 가지 하나 놓고 1000원에 팔고 있었다. 이것도 하나의 투쟁이라고 본다. 프랑스에서는 구걸할지언정 이렇게 오이 하나 놓고 파는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꼬부랑 할머니들이 몇십 킬로의 폐지를 주우러 다니신다. 넋놓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주 아름다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반지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TV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능을 해야만 인기를 얻는다. 재능이 뛰어난 연기자, 가수라고 하더라도 바보짓하면서 허술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왜 한국에서는 웃겨야만 할까? 지성으로 실력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인가? 사회 전체로 반지성화 작업이 유포되고 있다." "김화영 고려대 교수는 '문화사회가 되려면 그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공공도서관이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일 삐까뻔쩍한 건물은 교회다. 마을은 찌끄러져 가는데 교회만 하늘을 찌른다." "저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말한 맑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말을 한 맑스는 확실히 천재적인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아편이 때로는 지나치게 고통스런 인간에게 그 고통을 견디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존재할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담배가 그 모든 해악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나 한 인간이 그 아편을 빨며 평생을 살아서도, 그것이 권력까지 점유해선 안되는 거라고 믿는다." "최근 한국 사회에 두 개의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2008년 촛불의 좌절이고, 다른 하나는 대선 패배다. 대선 직후에 한국 사회는 공황상태였다. 그것이 오래 갔다. 사람들은 뉴스도 안보고, 다시는 정치에 머리를 디밀고 싶지 않아 했다. 다시 정치로 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투쟁으로 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노회찬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또 한번 절망했다. 그리서 삼성을 향해 칼을 갈았다. 삼성에서 오랫동안 일한 프랑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본 삼성은 이랬다. '삼성은 직원들을 로보트로 만든다. 경찰도 권력도 언론도 돈 주고 산다. 이렇게 많은 매수가 생활화되어 있는 기업은 처음 봤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중앙으로 이동한다.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미테랑도 '언제부터 우향후 했냐?'는 질문에 '당선 직후'라고 했다. 힘이 있을 때와 힘이 없을 때의 차이다. 조합원일 때와 노조위원장일 때의 차이처럼 말이다. 정치권에 발딛는 사람 중에는 바른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우뚝 서고 싶거나 출세하고 싶거나 수많은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선정을 베풀려고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없다. 남편이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에 이렇게 말해다. '이제부터 가장 강력하게 박 시장을 향해 투쟁해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미테랑 정권이 주는 교훈이다. 오랜 만에 좌파정권이 탄생해서 사람들이 행복해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 제대로 감시하고, 요구하고, 싸우지 못했다. 하워드 진이 그랬다. '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그저 그런 대통령이 될 것이며, 우리 시대에 그저 그런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바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실망시켰다." "지배계급을 바꾸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다. 그냥 지배계급이 바뀌는 것뿐이다. 성차별, 장애인차별, 여성차별 등은 그대로 둔 채 정치체제만 바뀌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계급 격차가 존재하고, 관습적 억압체제가 존재하는 한 혁명은 의미가 없다. 수직적 사회가 수평적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다원적 가치가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효율성, 성장 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재미, 의미, 아름다움 등을 추구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다양한 매력들이 세상의 가치로 확산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수만가지로 다원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덜 경쟁하고 덜 불행해진다." "신자유주의 이후 '고객님의 천국'이 되고 있다. '고객님'으로서 소비할 때만 대우받는다. 그 고객님을 뺀 나머지는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사회다. 저는 그 감정노동을 소비하는 게 미치도록 괴롭하다. 왜 감정노동을 하게 하지? 그것은 굴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굴욕을 일상화시키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는 계급사회다. 불평등이 깨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불행하다. 자신이 돈이 많아서 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자신이 그들을 위해 귀족처럼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행복해지려면 평등해야 한다. 너와 나는 똑같다. 교사와 교장 사이도 수평적이다. 딸인 칼리의 고모 딸이 결혼하는 날에 그 집의 파출부가 초대됐다. 한국사회에서 가능할까?" "사람들한테 언급되는 책을 읽기를 바라지 않는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스쳐간 책을, 자신을 만들어준 책을 읽기 바란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얼마나 멀리와 있는지….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책들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그 책들이 주는 울림을 다시 들으면서 신발끈을 조였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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