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법조기자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했다. “법과 상식의 간극이 너무 커 답답하다”는 지적이다.

김요한 SBS 기자는 11일 SBS 뉴스 홈페이지에 올린 <[취재파일] 읽을수록 답답한 판결문>에서 “지난 주 판결 이후 108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을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다. 읽을수록 사안이 명쾌하게 정리되기는커녕 복잡함과 답답함에 울화가 치밀었다”며 “이런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김 기자가 김용판 무죄 판결문에서 답답함을 느낀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째, 법원이 ‘임의제출’을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은 증거물로 경찰에 하드디스크를 제출할 때, ‘최근 3개월 치 기록만 보라’는 조건을 달아 ‘임의제출’했다. 분석관들은 김하영의 요구대로 3개월 치 기록만 봤고, 이것이 김용판 전 청장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검찰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법원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정보고 물건처럼 ‘제출하고 싶은 것만’ 제출할 수 있으며, 경찰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김 기자는 “현직 경찰, 검사, 판사들에게 물었다. 수사기관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며 “임의제출을 한다면서 이렇게 하면 오히려 의심을 산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조건을 달면 오히려 그 조건을 첨부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어 “법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상식적이지는 않다”는 판사들의 반응을 전했다.

두 번째는 검찰이 12월 16일 김하영의 댓글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지나치게 단정적인 표현을 썼는데도 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경찰은 하드디스크 조사 중 ID와 닉네임을 발견하고, 찬반클릭 등 대선개입의 정황을 포착했다. 하지만 이 활동이 불법 선거운동인지 아닌지는 판단이 어려운 상황었다. 이처럼 경찰이 ‘수사해서 나온 그대로’ 발표하지 않고 ‘혐의사실 관련 내용이 없다’는 등의 단정적인 표현을 써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매끄러운 표현을 찾다가 실수로 쓴 것‘이라며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 SBS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김 기자는 “재판부는 물건이 아닌 정보도 내고 싶은 것만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 조항은 엄격히 해석했다. 그런데 ‘혐의사실’이란 표현을 함부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넘어갔다”며 “엄격한 법리적용의 대상이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법원이 권은희 과장의 진술과 나머지 17명의 경찰들의 진술이 다르다며 권 과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김 기자는 “물증으로 거짓말이 드러난 게 아니라 진술이 다른 것”이라며 “권 과장의 폭로 시점을 따져보자”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 마당에 폭로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재판부는 나머지 경찰들에게 인사상 불이익과 보복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며 “권은희가 폭로로 챙기려 한 이익보다 나머지 경찰들이 마주하게 될 불이익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 같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물증 없는 뇌물 사건은 절대 유죄를 받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기자의 답답함과는 달리 이번 판결로 인해 김용판 전 청장은 매우 홀가분한 듯하다. 김 전 청장은 무죄판결을 받은 뒤 환하게 웃으며 “진실을 밝혀줌으로써 저와 경찰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재판부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이 김용판 전 청장의 ‘무죄’를 보장한 것은 아니다. 재판부의 결론은 “유죄의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2일자 지면 칼럼을 통해 이 같은 점을 비판했다. 권 위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의 결론은 ‘공소사실에 관한 검사의 논증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의 확신이 드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김용판)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12일자 중앙일보 30면
권 위원은 또한 “이번 판결로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 전격적으로 이뤄진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김 전 청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의 지휘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나”고 꼬집었다. 12월 16일 밤 11시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결국 4개월 후 ‘혐의 있음’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권 위원은 “‘오보’가 돼버린 발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남아 있는 것 아닌가”라며 “한마디라도 국민에 대해 송구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