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하면 발언, 불리하면 침묵… 박 대통령, 현안 대응 ‘두 얼굴’

안홍욱 기자 ahn@kyunghyang.com
ㆍ대선개입 등 “나와 무관” 제3자적 태도… 한참 지나 원론적 언급
ㆍ안보 문제나 정권 정통성 이슈 건드리면 즉각 강경·공세적 대응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현안에 입장을 표명하는 방법이 이중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리할 때는 최대한 침묵하고, 호재가 생기면 적극적·공세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뒀다. 박근혜 정부를 짓누르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도 “나와 무관한 일”이라는 제3자적 태도가 기본 입장이다. 이 사건이 정국 갈등의 근본 원인임에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박 대통령 입장을 묻는 여론 압박이 거세지면 한마디를 던지고 뒤로 물러서는 ‘치고 빠지기’식 행보가 9개월 동안 반복됐다.

박 대통령, 시간제 일자리 박람회 찾아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 행사장 내에 마련된 놀이방을 찾아 여성 구직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박 대통령은 지난 9월16일 국회 3자회담에서 “제가 댓글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인가”라고 불쾌감을 표출한 이후 야당의 거듭된 입장 표명 요구에도 회피하다가 10월31일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 달라”고 선을 그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 대통령이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이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계속 새로운 사실이 불거졌다. 이 때문에 정기국회는 겉돌고 정국도 꼬여 있는 상태다.

반면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본다거나 정권 정통성 문제를 건드렸다고 여기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 8월21일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고 하자,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두고서는 사흘 만인 지난 25일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가장 강경한 어조였다. 국정원이 지난 6월24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공개한 다음날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고 비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비판 발언에도 대응 속도가 빠르다. 지난 7월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 대통령을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의미)의 후손”이라고 거론하자 “잘못된 말로 국민통합과 화합을 저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즉시 맞받아쳤다.

박 대통령이 유독 정권 정통성과 안보 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을 두고 청와대에선 “원칙과 지켜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면에는 이런 사안의 경우 박 대통령이 강도 높은 입장을 밝혀도 여론 호응을 받고,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정원 사건 등으로 야권에 밀리는 분위기를 뒤집을 호재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즉각 ‘실명’으로 격한 입장을 내놓는 것도 공통점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인 그의 말에는 박 대통령 의중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불리한 국면에선 말문을 열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청와대 비서진의 추문이나 인사 파동 등에선 시간을 끌다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순방 중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을 당시 이남기 홍보수석, 허태열 비서실장을 통해 사과토록 했고, 비판 여론이 커지자 직접 사과했다. 정부 출범 과정에서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을 때에도 대독 사과를 시킨 뒤 한 달이 지난 4월에야 민주당 지도부와의 비공개 만찬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것으로 입장 표명을 갈음했다.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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