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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우리 공부합시다'에서 "언론은 사회의 목탁, 거울이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참 언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피폐해질 수 있는가 하는 시대의 해찰을 하고 있다"며 "언론은 끝없는 겸손함, 자기점검과 사실과 진실에 임해야 한다는 경고를 드린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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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11일 밤은 깊었고 낯빛은 불콰해졌다. 서울 무교동 야외 술집들은 마치 대낮인 양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1957년 <한국일보> 기자로 출발해 2013년 현재까지 영원한 현업 기자로 살고 있는 팔순의 김중배 선생. 편찮으신 뒤로 정기간행물에 연재하는 칼럼은 중단했지만 지금도 늘 기자의 시선으로 살고 있는 56년간의 대기자. 그는 취기가 돌자 옛날의 그 노래를 팔뚝질과 함께 흥겹게 불러재꼈다. 우렁찬 김 선생의 노랫가락은 광화문 빌딩숲을 지나 밤하늘로 울려 퍼졌다. 마치 에코가 한껏 들어간 노래방 마이크에 대고 부르는 것처럼 노랫소리는 크고 힘찼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주최한 '공부합시다' 강연에 나선 김중배 선생은 강연 후 뒤풀이에 이어 기어코 2차 맥주 집으로 후배들을 몰고 갔다.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그의 손에 이끌려 불혹의 후배들은 종종걸음을 쳤다. 

"조그마한 대포집이 사라져서 너무 슬퍼. 안주도 많이 필요 없고 딱 한잔만 하면 좋을 그런 작은 술집들이 없어. 전부 대형화 되니까 그것도 서러워. 아쉬워."

한 개비 담배에 불이 꺼질 때마다 곧바로 라이터에 다시 불을 붙여 그 다음 담배를 훅 빨아들이는 김 선생의 모습은 흡사 20년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서울역 광장에 서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던 그 모습과 같았다. 한동안 많이 편찮으셨던 그분이 병마와 싸워 이기고 돌아온 것일까? 아주 오랜만에 '청년 김중배'와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일보> 기자, <동아일보> 기자, 논설위원, 편집국장, <한겨레> 사장, <MBC> 사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언론광장 상임대표. 일생토록 말과 글로 살아온 그는 한동안 현업에서 떠나 있다가 대중 앞에 섰다. 그것도 '해찰 전문기자'로.

비루한 이 시대의 언론

- 선생님, 해찰이 무엇입니까.
"우리 사전을 보니까 쓸데없이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뒤적이고 뭐 그런. 그러니까 방황과 배회의 뜻이 있지만 동시에 안 좋은 뜻도 있지. 사방을 직접 거리면서 해코지를 한다, 그런 뜻이 있다. 그러나 나는 용기나 능력이 없어서 해코지는 못하고. 방황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음... 이것저것 직접 거리면서 세상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는 것을 해찰이라고 생각해. 그냥 방황 배회하면서, 세상을 방랑하는 이웃사람들, 낯선 사람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분들과도 만나는. 그러니까 주로 책을 통해서 만나는 거지."

가끔 부인 안행자씨와 산에도 가지만 대개 도서관 정기간행물실과 열람실을 오가며 해찰한다는 김 선생은 다독가로도 유명하다. 가끔은 무식한 후배들에게 요모조모 차분히 설명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코치도 해주시는 김 선생은 최근 니콜라스 루만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어렵긴 해도 위르겐 하버마스만 읽을 때보다는 훨씬 낫다고 했다. 그러니, 너희들도 하버마스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콜라스 루만도 함께 읽으며 생각의 균형을 맞추라는 뜻으로 들렸다.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가면 희끗희끗 김 선생 또래의 노인들이 <조선일보>를 붙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고 했다. 여러 신문을 읽지만 왜 유독 <조선일보>에 눈길을 주는 것일까. 몇몇 말을 붙여봤으나 생각의 절벽을 느껴 그만두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니 김 선생 눈에 비친 모든 현상과 사람들은 취재거리인 모양이다. 반평생이 넘도록 말과 글로 살았으니 그렇지 않다면 그 역시도 거짓일 것 같았다.

김 선생은 당일 강연에서 파주 아울렛을 해찰한 뒤 우리 언론의 현주소와 연결했다.

"파주 아울렛에 가면 커다란 세 개의 거울이 서 있습니다. 가운데 거울에 저를 딱 비춰보니까 물구나무 선 모습이 보여요.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그 옆을 보니까 제가 갑자기 키다리가 됐어요. 참 신기하구나. 이쪽을 보니까 아주 난쟁이가 됐어요. 우리가 흔히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하는데 거울 중에는 이런 거울도 있다는 것을 어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런 작품을 내건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참담한 심정을 가지게 됐죠. 지금 50여 년 동안 이쪽에 몸 담아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 현역에 있는 후배 중에서 제가 알만한 후배들은 소위 언론의 중진이 되어 있는 이 시대의 언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비루해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입니다.

왜곡, 날조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었으니 제가 구태여 재방송 할 필요는 없고, 어느날 주류언론이라는 어떤 신문이, 나는 주류언론이라는 표현도 못마땅하지만, 여하튼 그 신문의 사설을 보니까 이런 제목이 있었어요. '민주당 촛불 세력과 손잡으면 국민 지지 못 받는다.'

아니, 촛불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닌가. 도대체 누구의 지지를 말하는 것인가. 촛불 세력, 촛불 집회,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비국민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제가 또 해찰에 나섰습니다."

"언론이 무엇인가" 묻고 또 묻는 김중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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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우리 공부합시다'에서 "소위 먹물들이 자기 이론의 수렁에 빠져서 자기 이론에 매몰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며 "소위 언론종사자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이런 자기 관념, 이념에 매몰돼서 사실을 제대로 못 보고 왜곡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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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은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해찰을 나갔다고 했다. 광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사회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꼼꼼하게 청취자들에게 옮겼다.

"사회자가 그래요. 일부 참가자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부르짖지만 시국회의는 그런 입장과 관련이 없다, 다만 국정원이 저지른 국기문란, 민주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을 규탄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 말도 좋았지만, 당시 청문회 정국에서 사회자가 청문회를 살려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거예요. 예전에는 박살내자, 타도하자, 죽이자 구호가 많았는데 살려내자, 얼마나 좋은가. 참 좋은 진전이구나 생각했어요.

또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는데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어떤 국회의원이 당신은 광주 경찰이야 대한민국 경찰이냐고 그래요. 그러면 광주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광주도 대한민국인데 어떻게 저런 말이 가능한가. 말길의 왜곡이 불쑥불쑥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그러니 우리가 휴전 된 지가 6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전쟁상태구나, 대결이로구나, 전쟁이라는 게 뭐예요? 배제의 논리. 내 편이 아니면 배제해야 하는 것. 그런 것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침통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57년 기자생활을 한 김 선생은 팔순이 넘어서도 "언론이 무엇인가" 묻고 또 물었다. 언론은 말과 글인데, 소위 주류언론에 속해 일하는 저널리스트는 언론의 역할에 충실한가 묻고 또 물었다. 주류언론이라는 표현도 거슬리지만 그 부류에 속한다는 사람들은 현재의 언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감쌌다.

김 선생은 이날 강연에서 "언론은 사회의 목탁, 거울이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참 언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피폐해질 수 있는가 하는 시대의 해찰을 하고 있다"며 "언론은 끝없는 겸손함, 자기점검과 사실과 진실에 임해야 한다는 경고를 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김 선생은 소위 '먹물'들에 대해 비판했다. 지식인 비판인 것이다. 김 선생은 "소위 먹물들이 자기 이론의 수렁에 빠져서 자기 이론에 매몰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며 "소위 언론종사자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이런 자기 관념, 이념에 매몰돼서 사실을 제대로 못 보고 왜곡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김 선생은 '신문방송=언론'이라는 법칙도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다. 언론이 마치 신문방송의 과점물인 양 착각하는 행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 선생의 육성이다.

"<뉴스타파>를 소위 주류언론들이 뭐라고 하냐면 폭로인터넷매체, 좌파인터넷매체라고 합니다. <오마이뉴스>도 인터넷매체지요. 그건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언론이 과연 그런 것인가."

김 선생은 한동안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그는 "소위 주류언론이라는 언론이 언론의 지평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깊다"며 "민주사회에서 새로운 미디어, 소셜미디어, 인터넷미디어들이 새로운 공공성을 획득해가고 있는데 왜 너희들(주류언론)만 언론이라는 거대한 명사를 갖고 있나, 그것은 대단히 부당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MB정부 이후 언론에 많은 퇴행이 있었다"며 "한동안 없었던 해직기자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고 언론사의 파업도 많아졌다 그것은 어느 쪽의 정당성 시비를 넘어 불행한 사태가 연출된 것이고 그것은 분명한 이 시대의 아픔"이라고 지적했다.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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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우리 공부합시다'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대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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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났고 여러 사람이 김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노년의 퇴임 교수나 20대의 여성 직장인이나 똑같이 80년대 <동아일보> 칼럼의 팬이었노라 고백했다. 김 선생은 조용히 웃었다. 기억해주어 감사하다면서.

우리 시대 언론에 대해 김 선생은 대체로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김 선생은 팔순의 나이로 해찰을 시작하면서 '역사의 낙관'을 찾고 있다고 했다. 비관적이지만 결코 낙관을 잃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 말길과 살길을 찾아 해찰에 나선다는 것.

김 선생은 등산복 차림의 일명 해찰복을 입고 낡은 검정 가방을 든 채로 오늘 또 어딘가에서 해찰 중일 것이다. 56년간 기자로 살고 있는 김 선생의 해찰이 언제 어떻게 종료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후배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독자들은 여전히 김 선생의 해찰기를 보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노령의 은퇴자나, 갓 대학에 입학한 손주뻘의 대학생들이나 아니면 그밖의 어떤 사람들도.

우리는 과연 방랑 중인 김 선생의 '해찰 전문기사'를 볼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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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주최로 열린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 초청 특강에서 참가자들이 강연을 경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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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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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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