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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개병신'소리 듣기 싫습니다"[전문] KBS 38·39·40기 기자의 세월호 사고 보도 '반성글 ⑧~⑩'
14.05.07 17:17
최종 업데이트 14.05.07 17:17세월호 침몰 사고를 취재한 KBS 38·39·40기 취재·촬영기자 40여명은 7일 오전 사내 기사작성용 보도정보시스템에 자사의 세월호 사고 보도를 반성·비판하는 글 10건을 올렸다. 글을 공개한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의 동의를 얻어, 10건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다만, KBS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글이라는 기자들의 뜻에 따라, 기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말] |
다음은 이 글의 전문이다. 또한 다른 2명의 기자가 쓴 글 전문도 덧붙인다.
[반성합니다⑧] "개병신 소리 듣기 싫습니다"
세월호 침몰 다음날 진도 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누구보다도 가족 분들이 (구조 상황을) 들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당한(?) 지시에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이 떠나갈 듯 큰 박수로 화답하더군요. 오해마세요. 오직 KBS <뉴스9>에서만 그랬습니다.
"경사 났어? 박수를 치고 그래!"
편집되지 않은 실종자 가족의 반응입니다. 우리 뉴스에선 철저히 외면당한 목소리이기도 하죠. 자식을 바다 속에 홀로 둔 부모가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는 정부에 할 수 있는 당연한 분노인대도요.
박수·갈채요?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수많은 공무원과 경호원, 연단 위의 박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이들 공무원의 호응이 마치 가족 반응인 것처럼 둔갑한 게 문제죠. '날조'입니다.
저는 KBS 뉴스에서 사고 수습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수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행위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던 박 대통령의 경솔한 언행을 지적하는 것도 본 적이 없네요. 박 대통령이 일반 조문객을 마치 유가족인 척 위로하는 청와대발 촌극은 언급조차 없었고요. 아! 박 대통령의 무성의한 사과를 비판한 유가족 기자회견은 일선 기자들의 항의로 겨우 방송에 나갔죠. 그마저도 메인 뉴스에는 못 나갔습니다.
덕분에 요즘 취재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입니다. 얼마 전 한 후배가 세월호 관련해 시민 인터뷰를 시도하다 대여섯 명의 시민에게 "제대로 보도하세요. 왜 그따위로 방송해서 개병신(KBS) 소리를 들어요."라는 말을 들었답니다. 이 수모, 절대 후배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닙니다. 편파 보도를 지휘하는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에 화가 났다가도 금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왜 나는 "시민단체의 통계는 신뢰할 수 없어 방송에 쓸 수 없다"는 데스크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나. 왜 나는 공기업 사장이 여당 대표에게 인사청탁을 한 사건을 기사화 하지 않았을 때, 옆에서 벙어리처럼 있었나. 순간 순간 비겁함이 모여 지금의 '개병신' 같은 상황을 만든 것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말씀드립니다.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세요. 시민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편집권 독립' 외치시지 말고요.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서 하세요. 그 편이 오히려 솔직한 겁니다. 더 이상 개병신 소리 듣기 싫습니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성합니다⑨] 우리는 무엇입니까
1. 재난 방송 주관사로서 보도에 어떠한 준칙도 없었다. 오히려 종편에 끌려 다니는 상황이었다. 사고 원인과 구조 상황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가 주가 되어야 했다. 구조과정에서 잘못 진행 되고 있는 부분들에 과감한 지적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청률에 급급해 - 유가족들의 감정과 사생활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에만 공력을 쏟았다. 관련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데도 연일 눈물 짜내기식 인터뷰와 취재를 지시 받았다. 예를 들면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분향객을 잡아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멘트를 따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보여 줄 수 있었던 최선은 아니지 않은가. 분향소에서 이 과정에 대부분의 일과 시간을 투여 당해야 했던 입사 일 년 미만의 기수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2. 현장 연결을 줄이고 3분 4분 혹은 그 이상의 리포트 편성이 필요했다. 취재기자 비추기식 현장 연결이 지나치게 많았다. 사건 현장과 1키로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 취재진이 사고 해역 어딘가 떠있다'는 이유로 의미 없는 중계를 연이어 내보냈다. 해상에 있던 기자들은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동어반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시청자들이 정작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의 리포트에 집중이 부족했다. 관에서 나오는 정보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식의 보도가 아니라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키워주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역할을 KBS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타사에 비해 압도적인 인력과 기술력을 갖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얼마나 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현장에 있다. 팽목항에선 kbs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렵다. 어떻게 하면 취재를 잘해나갈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를 피해갈지 부터 고민하게 된다. 대체 우리는 무엇 입니까.
[반성합니다⑩] "KBS를 어떻게 믿어요?"
"KBS를 어떻게 믿어요?"
안산에서 취재한 13일 동안 매일같이 들은 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안산 동네 곳곳에서, 'KBS'라는 이유로 유가족과 시민들은 인터뷰를 거부했고 질책을 넘어 크게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장례식장 조문도 거절당했다는 선배 기자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려왔습니다. 사고 초기 혼선에 대한 분노라 생각했습니다. 답답했지만, 조심스럽게 취재를 이어나가고 현장을 그대로 보도한다면 조금씩 신뢰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취재 초기에 몇몇 유가족들은 희생된 아이들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그조차 거부하는 유가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언론과 대응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소통할 언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KBS뉴스에는 자신들의 '호소'만 있고 '이야기'는 없다며 거부한 겁니다. 실제로 슬픔에 잠겨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모습은 뉴스마다 넘쳤지만, 유가족들이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던 모습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공식합동분향소가 문을 연 지난달 29일도 그랬습니다. 그날 새벽, 희생된 아들이 찍은 마지막 영상을 타사에 제보한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와 만나 뒤늦게나마 영상제공과 인터뷰를 약속받았지만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번복됐습니다. 하루 종일 설득이 이어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어차피 보도되는 것이라면 공영방송이자 가장 큰 방송사인 KBS에 보도되길 원했지만, 유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확신이 끝내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9시 뉴스 톱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하지만 정부 대책을 요구하던 유가족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은 9시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하는 동안 'KBS'라는 얘기에 고개를 돌리고 손을 젓고 말문을 닫았던 유가족들은 먼저 타사에 나서서 제보를 하고, 떠난 아이의 사연을 얘기하고, 현장의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왜 KBS가 아니라 다른 언론일까. 우리 보도가 유가족들이 '말하는 것'보다, 유가족들에게서 '듣고 싶은 것'만 집중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슬픔에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의 모습도, 떠나간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물론 필요한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유가족들이 전하고자 했던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에는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고, 오히려 과한 취재가 유가족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있거나 이제 막 마친 유족들에게 아이들의 생전 모습을 취재해야 했고 마치 관객석처럼 보이는 임시 합동분향소 2층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을 뒤로 하고 며칠씩 중계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분노한 어느 유족에 의해 취재진들은 분향소 바깥으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취재기자인 제가 더 열심히 발로 뛰었더라면,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고민하고 취재해 보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크고 자책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아쉬움과 반성을 토대로 유가족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 아닌 그들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편에 서서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들을 배려하는 것. 그것이 제가 아는 공영방송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을 충실히 했을 때 "KBS를 어떻게 믿어요?"라는 의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합니다.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합니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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