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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껄끄러운…, 새누리 ‘잠룡’ 3인방의 ‘전쟁’

등록 : 2014.10.14 15:49 수정 : 2014.10.14 16:35

 

왼쪽부터 김무성, 김문수, 이재오, 이완구

지금 여당은 총성 없는 전쟁터…무슨 사연?
‘대권 야망’ 김문수·김무성·이재오 등 ‘반친박연대’ 결성 분위기
국회의장 향한 이완구 대표 공격은 충성심…‘대권 도전 노림수’
박대통령 ‘힘의 누수’ 빨라질수록 연대·협력·경쟁·갈등 요동칠듯

[임석규의 정치빡 ⑫]

##장면 1

13일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혁신위원장, 이재오 의원 등이 중국 베이징행 비행기에 함께 올라탔다. 새누리당과 중국 공산당의 첫 정당 정책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하는 3박4일 일정이다. 3인의 공동 행보는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세 사람 모두 박근혜 대통령과 껄끄러운 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무성 대표는 ‘친박’ 원로 서청원과 일합을 겨뤄 대표직을 쟁취한 사람이다. 김문수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박 대통령을 호되게 공격했다. 이재오는 개헌론 등 사안마다 박 대통령에게 날선 각을 세우고 있다. 세 사람의 동반 중국행을 두고 ‘반 친박연대’가 결성되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면 2

비슷한 시간인 13일 오전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이완구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을 겨냥한 이완구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혼자 만나는 것도 아니고 국회 구성원이 만나는 것 아니냐.” “이 시점에서 남북 국회회담이 적절한 것인가 얘기해야지, 혼자 불쑥 하겠다고 것은 말이 안 된다.” 정 의장의 남북 국회회담 제안에 대한 비판이었다. “(의장이) 자기 맘대로 하면 안 된다. 그건 국회 구성원에 대한 결례다”라고도 했다.

여권 중진들의 협력과 연대, 경쟁과 갈등과 구도를 살짝 드러내 주는 단면들이 포착됐다.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여권의 핵심부에 포진한 사람들이다. 장차 폭풍처럼 불어닥칠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예고편을 관람한 듯한 느낌이다. 정치적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도 몇 년 뒤에 일어날 사건의 징후를 읽어낸다. 2017년 대선 고지를 향한 여권 잠룡들의 마라톤에 벌써 불이 붙었다.

김무성과 김문수는 사석에선 ‘문수야, 무성아’라고 부르며 서로 말을 트는 막역지우다. 친박과 친이로 당내 계파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갈등관계에 있던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이는 최근 더욱 가까워졌다. 경기도지사에 불출마하고 동작 재보선 출마 요구도 완강하게 뿌리친 김문수는 뭔가 ‘할 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보수 혁신’의 기치를 내세운 김무성은 뭔가 ‘성과’가 절박한 시점이었다. 김무성은 김문수에게 혁신위원장 손길을 내밀었고 김문수는 김무성의 내민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하지만 정치판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고전적 명제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우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두 사람 모두 대선을 겨냥하는 사람들이다. 잠재적 경쟁자라는 얘기다. 두 사람의 우정이 아무리 돈독하다 해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까지만 이어지는 ‘시한부 우정’일 수밖에 없다.

중국 방문길에 동반한 이재오의 존재도 여전히 눈길을 끈다. 이재오와 김문수는 과거 운동권 시절부터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민중당을 같이 창당했고 ‘독자 정당 노선’을 접고 신한국당으로 함께 갈아탔다. 운명적으로 질기게 엮인 두 사람이다. 이재오와 김문수도 꽤 깊은 인연이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2인자’로 군림하던 이재오는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갈라선 이후 ‘친박 좌장’의 위치에서 파문당한 김무성에게 손길을 내밀었고, 김무성은 이 손길을 덥석 잡아챘다. 이재오와 친이계의 전폭적 지원 덕분에 고립무원의 처지이던 김무성은 이명박 정권에서 여당 원내대표로 당선됐고 ‘친박’의 울타리 바깥에서 정치적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무성과 김문수, 이재오 트리오는 개헌 등 청와대와의 관계, 조강특위 구성 등 새누리당 내부 세력 경쟁, 혁신 의제 등을 두고 당분간 공고한 연대와 협력관계를 형성해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의 정의화에 대한 일련의 공격은 나름의 치밀한 계산 아래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의화는 국회의장 경선 과정에서 ‘친박’ 출신 황우여를 가볍게 눌렀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친박에게 빚진 게 없으니 대통령이나 여당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별로 없다. 정의화는 꿈이 큰 사람이다. 정의화는 앞으로도 여권의 요구와 무관하게 소신껏 행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정의화가 박 대통령이나 ‘친박’의 눈에 달가울 리가 없다. 세월호 특별법 교착 국면에서 정의화 의장이 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회의 일정을 미루자 이완구는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며 강하게 반발했다. 즉각 사의가 반려돼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완구는 정의화에 대한 원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적잖은 정치적 성과를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이완구는 ‘사퇴 해프닝’을 통해 청와대에 대한 강한 충성을 내보였고 보수층 내부에서 ‘화끈한 사람’이란 이미지를 쌓았다. 이완구는 얼마 전에도 김기춘 비서실장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등 한결같이 청와대에 주파수를 맞추는 행보를 하고 있다. 이완구 역시 일찍부터 대선을 꿈꿔온 정치인이다. 충남지사를 지낸 지역적 자산에다 ‘친박의 적자’로서 착실히 점수를 쌓아 차기를 노린다는 계산 아래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는 역시 노회한 사람이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구조적으로 갈등관계로 치닫기 쉽다. 대표는 대의원들의 투표, 원내대표는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두 사람 모두 ‘선출된 권력’이란 점에서 상대에게 고개를 숙이기가 쉽지 않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대표-원내대표 투톱 체제’는 수없는 갈등관계로 점철돼 있다. 김무성과 이완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물론 아직까지 두 사람의 갈등관계가 표면화한 적은 없다. 하지만 물밑에선 두 사람의 직간접적인 신경전과 견제구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 당시 김무성 대표가 했다는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줘도 된다”는 발언이다. 이 발언으로 김 대표는 여권 내부에서 상당히 궁지에 몰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인지 여권 안팎에서 ‘김무성 역할론’이 줄기차게 제기됐음에도 김무성은 “협상은 원내대표의 일”이라며 이완구 원내대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각별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도 대조적이다. 김무성은 한때 ‘김기춘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완구는 노골적으로 김기춘을 옹호해왔다. 김무성과 이완구는 당분간 공개적 대립을 자제하겠지만 결정적 순간엔 격렬한 대결을 불사할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 김문수, 이재오 트리오와 정의화, 이완구의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1996년 15대 국회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단 국회 진입 동기다. 김무성과 김문수는 51년생 동갑내기고, 이완구는 50년생, 정의화는 48년생, 이재오는 45년생이다. 김무성과 김문수, 그리고 정의화는 대선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잠재적 갈등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완구는 필사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휘하는 ‘힘의 누수’가 빨라질수록 여권 잠룡들의 연대와 협력, 경쟁과 갈등 관계도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sky@hani.co.kr
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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