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모략, 국민들 배신감... 원불교도 화났다"[나는 분노한다 26] 국정원 대선개입 시국선언, 원불교 중앙총부 정봉원 교무
13.09.06 15:13
최종 업데이트 13.09.06 15:13▲ 정봉원 교무. 그는 "여성 교무의 사회발언이나 활동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원불교지만, 그런 활동이야말로 종교인들의 사명이자 책무"라고 강조했다 | |
ⓒ 안소민 |
"대한민국 정치는 후퇴하고 있습니다. 마녀사냥식 정치는 그만둬야 합니다. 국정원의 정치 모략을 온국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고, 시대감각이 한창 뒤떨어진 것입니다."
원불교 중앙총부의 정봉원 교무는 단호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4일 오후, 정봉원 교무는 침착한 목소리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국민들 배신감 매우 크다"
정봉원 교무를 비롯한 원불교 전북교구 20여명은 지난 8월 21일 새누리당 전북도 당사 앞에서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과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던 원불교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정봉원 교무는 "국정원 관련 시국선언이 꼭 이례적인 일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죽기로서 취하고, 불의는 죽기로서 버리라는 대종사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떻게 종교인들이 가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봉원 교무는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보면서 착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단다. 원광대학교 88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선배들과 스터디를 하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갔고, 실제로 야학과 같은 활동을 통해 현장에 몸소 뛰어들기도 했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70-80년대에 비해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아지고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몇 년 전부터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후퇴하고 있다, 역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출가한 몸이고, 다른 종단에 비해 여성 교무의 활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원불교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정봉원 교무는 온라인에 시국선언 공지를 띄우고 뜻 맞는 교무들의 생각을 모았다.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국선언에 참여했습니다. 국정원이 어딥니까? 대통령 직속기관 아닌가요. 그런 대통령 직속기관이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운동을 조작했다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짓이죠. 국민들의 배신감이 매우 큽니다. 그 배신감에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 촛불을 들게 된 거구요."
▲ 8월 21일은 원불교에서 법계의 인증을 받은 중요한 날이다. 이 날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무들은 목숨을 받쳐 진리를 지키듯, 이 땅의 정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 |
ⓒ 정봉원 |
정봉원 교무는 "국민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비록 허공의 메아리에 그칠지라도, 지나는 사람 한 명에게라도 현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날 참여한 교무 20여 명 모두 바쁜 일정 중이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나섰다. 분노가 차고 또 차올라 거리로 나오게 된 것.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중에는 80대의 교무도 있었다.
"원불교 교전에 보면 '대중들의 입을 모으면 하늘 입이 되고, 대중들의 귀를 모으면 하늘 귀가 되고, 대중들의 마음을 모으면 하늘 마음이 된다. 대중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중들의 마음 즉 국민의 마음이 진리라는 거죠. 하지만 요즘 정치 현실을 보세요. 보수언론 몇 개만 있으면 자신들의 과오가 감춰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정보화 시댑니다. 몇 년전에 비해서 정보량과 파급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라졌습니다. 이 IT강국에서 국정원과 청와대가 하는 짓은 손으로 태양을 감추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대감각이 없는 것이죠."
원불교 성직자들이 시국선언을 한 날은 8월 21일. 이날은 원불교에서 매우 바쁘고 중요한 날이다. 박중빈 대종사의 9대 제자가 진계로부터 깨달음의 인증을 받은 날이다. 이날 시국선언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이날이 지니고 있는 의미 때문이다. 당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리를 밝히고, 진실을 추구하는 성직자의 태도는 시대가 바뀐다고 변하는 게 아니다. 종교인이라고 뒷짐지고 바라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인이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순수하지 못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죠. 정치라는 것은 곧 민생과 직결된 것입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어떻게 모른 체 하고 있을 수 있나요?"
"정치인들 민초의 힘 무서워 해야"
종교의 궁극적 목적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듯, 정봉원 교무가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도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서다. 수행자 사이에서는 '여석압초(如石壓草)'라는 말이 있다. 드러난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정신적 평화만을 얻는 것은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돌을 눌러놓은 것과 같다는 것으로 수행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정봉원 교무는 '여석압초'를 민중의 힘에 견주어서 설명했다.
"민초는 풀입니다. 짓밟으면 짓밟을 수록 더 억세집니다. 무거운 돌을 눌러놓으면 일단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더 굳세지고 강해집니다. 권위나 통제, 억압이 더 강해질수록 풀은 옆으로 더 억세게 새어나올 겁니다. 저는 민초의 힘을 믿습니다. 정치인은 이 민초의 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 원불교 전북지부는 지난 8월 21일 새누리당 전북도당사 앞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 |
ⓒ 정봉원 |
사회문제에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봉원 교무는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개인의 자아완성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선택이었다.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했더라면 가지 않을 길이었다. 정봉원 교무가 꿈꾸는 세상은 '죽어서가 아닌 바로 이 현실에 존재하는 낙원'이다. 현실의 낙원, 정토를 위해 정봉원 교무는 앞으로도 필요하면 거리로 나설 것이다. 성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연대해서 보다 크고 진실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오 “대통령이 야당 만나 갈등 해결해야 (0) | 2013.09.11 |
---|---|
도청이 무서워 꽃조차 키울 수 없는 국회의원 (0) | 2013.09.09 |
빚내서라도 무상보육 책임지겠다 (0) | 2013.09.06 |
독재를 사죄하는 세계, 유신의 꽃에 취한 박근혜 (0) | 2013.09.06 |
부산 지식인 729명 시국선언 (0) | 2013.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