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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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국민 사과하는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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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대국민 사과에 나서면서 준비된 발표문만 읽고 기자회견장을 떠나 버린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오만한 태도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 그대로 드러났다. 사법체계를 농락한 '간첩 증거 조작'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조직의 수장이 '3분 사과'로 버티기에 나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 대통령은 남재준 원장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말도 뒤집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달 10일, 국정원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증거자료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 진상규명 후 조처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이 증거조작을 한 것도 모자라 이를 덮기 위해 또 다른 공작을 벌이고 주요 국정원 협력자들의 신분까지 노출 시켰음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주문했음에도 거짓 해명으로 여론 물타기에 나서기도 했다. 설사 남 원장이 사전에 증거 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문제가 불거진 후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지휘한 책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15일 "국정원은 환골탈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남 원장에게 또 다시 면죄부를 줬다. 대신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국정원의 '비정상'엔 눈 감은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의 맹목적인 남재준 감싸기는 한두 번이 아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원은 계속해서 정쟁의 중심에 서면서 국정운영 부담을 가중 시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회 각 분야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도 정작 대통령 직속기관이자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비정상적 행태에는 눈을 감았다. 특히 대선개입 사건으로 정국이 꽉 막히고 국정원에 대한 개혁 요구가 빗발쳤을 때도 '셀프 개혁안'을 만들라며 변함 없는 신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남 원장의 셀프 개혁은 실패했다. 박 대통령의 면죄부를 받은 후 국정원에서는 증거조작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또 남 원장이 4개월 전 국회에 셀프 개혁안을 보고하면서 철저한 개혁을 약속했음에도 국정원 안에서는 올해 초까지 외교문서를 위조하는 전례 없는 증거 조작이 버젓이 벌어졌다. 제대로된 개혁이 추진됐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국정원의 이런 위법 행위는 박 대통령의 국정원 감싸기가 근본 원인이다. 박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 때문에 또 한 번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잃어 버릴 신뢰가 남아 있지 않은 '남재준의 국정원'을 두둔하는 건  그의 맹목적인 충성심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몸 바쳐 정권 구한 남재준과 박 대통령의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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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0월 16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남재준 국방안보특보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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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원장은 지난 해 대선개입 사건으로 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국가 기밀문서인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으로 공개했다. 국정원이 정쟁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부담을 감수하고서 정권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국정원의 일탈로 정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과 대화록 실종 사건으로 전환됐고 야당이 오히려 진땀을 뺐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권의 위기 때마다 몸 바쳐 충성한 남 원장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남 원장에게 보은했다.

하지만 남 원장을 향한 박 대통령의 남다른 '사랑'은 정치적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은 입을 닫고 있겠지만 신뢰를 잃은 남 원장이 칼자루를 잡고 있는 국정원 개혁은 야당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될 것이다. 

특히 국정원 개혁을 둘러싼 주도권 논란에 특검 도입 등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야당의 요구에 대해 그동안 해 왔듯이 무시 전략을 구사하겠지만 야당을 무시하는 대통령이 협조를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욕심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도 국회 처리 노력을 당부한 복지3법 등 현안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남재준 살리기는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남재준 원장을 안고 가기로 한 박 대통령의 선택에는 60%를 돌파한 국정운영 지지율이 주는 자신감과 여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율에 취해 지난 한 해 동안 보여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과 정치적 소용돌이가 반복된다면 박근혜 정부에 대해 아직 기대감을 거두지 않고 있는 중간층의 견제 심리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높은 지지율은 덫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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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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