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검찰총장인데 왜 야당이 난리치세요?”

등록 : 2013.12.08 20:33수정 : 2013.12.08 21:01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3자회담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 대통령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에 불쾌감
대체 윗선은 누구인가?… ‘공작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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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의 검찰총장인데 왜 그렇게 야당이 난리를 치세요. 민주당 검찰총장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16일 국회에서 열린 ‘3자 회담’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복수의 여야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9월6일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아들 의혹’ 보도 이후 논란이 일자 ‘당연한 절차’로 법무부 감찰을 실시하고 ‘본인 소명’ 기회를 주기 위해 사표 수리를 보류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김 대표는 회담 뒤 의원총회에서 “채 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이 당연한 일이라면, 검찰 집단이 술렁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냐고 물었으나 박 대통령은 답변이 없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이 불거진 과정과 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새누리당은 브리핑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채 총장을 압박해 사퇴시키려 했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박 대통령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단적으로 잘라 말했다”고 밝혔다.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아들설과 관련한 초등생의 ‘가족관계 기록부’를 불법 열람한 사실을 두고 청와대가 “개인적 일탈”(이정현 홍보수석)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해명은 되레 청와대의 ‘채동욱 찍어내기’ 기획설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을 낳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 연루된 정보 유출, 정말 몰랐을까 

사건은 9월6일 보도 석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11일 오후 3시 채동욱 검찰총장은 ‘국정원 의혹 사건 처리 관련 검찰총장 입장’을 발표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는 외압을 행사하던 때다. 이로부터 1~2시간쯤 뒤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이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에게 채아무개군의 이름, 주민번호, 본적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며 확인을 요청했다. 조 국장은 가족관계등록부 담당인 김아무개 OK민원센터팀장에게 부탁했으나, 주민번호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조 행정관은 다른 번호로 다시 요청했고, 조 국장을 이를 확인해줬다. 이틀 뒤인 6월13일 조 행정관은 조 국장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고, 조 국장은 “밥이나 한번 먹자”고 답했다. 다음날 검찰은 국정원 사건에 대한 1차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석 달의 ‘잠복기’가 지난 뒤 9월6일 보도가 나왔다.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이 전면화한다. 9월7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서초구청 임아무개 감사담당관실 과장에게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요청했다. OK민원센터팀장이 공문이 없다고 반발하자 뒤늦게 공문을 보냈다. 청와대는 9월16일 특별감찰을 실시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보도 이후 감찰 규정에 의해 임의적인 방법으로만 관련 자료를 확인하거나 확보할 수 있었을 뿐, 보도 이전에는 (채 총장) 관련 정보를 수집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보도 석 달 전 이뤄진 개인정보 불법 유출의 당사자 가운데 청와대 행정관이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석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관련해 다시 주목받는 폭로가 있다. 박지원·신경민 민주당 의원이 각각 9월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10월1일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 제기한 주장이다.

“6월14일 검찰의 기소 이후 곽상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찰 출신인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에게 채동욱의 사생활 자료를 요청했다. 당시 서 차장은 ‘국정원이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직접 하는 것은 곤란하다. 경찰 정보 라인을 통해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얘기했다.”

“곽 수석이 (8월5일) 해임당한 뒤 이중희 민정비서관에게 사찰 파일을 넘겨줬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8월5일 취임한 뒤 검찰 출신 정치인을 만나 ‘이 두 사람(송찬엽 대검 공안부장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날려야 한다. 채 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곽 전 수석이 8월 중순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채 총장은 내가 날린다’고 얘기했다.”

한겨레tv 썸네일 한겨레캐스트 채동욱 백기철
 

조 행정관과 김 국장의 ‘진실 공방’으로 변질  

이런 주장에 대해 당사자들은 모두 강력 부인했고, 새누리당은 근거 없는 폭로로 정치 공세를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과 해명, 폭로 사이에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제기된다. 우선 지난 9월 특별감찰 결과와 달리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 연루돼 있다. 청와대가 이 사실을 알고도 숨긴 것인지 당장 의문이 제기된다. 청와대가 조 행정관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했다고 지목한 김아무개 안전행정부 국장이 “청와대가 왜 날 지목했는지 모르겠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지점이다. 김 국장은 6월11일 당일 조 행정관과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주고받았지만, 인척 사이인 조 행정관과 주말 고향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 국장의 주장이 맞다면, ‘조 행정관이 친분이 있는 김 국장의 요청으로 벌인 개인적 일탈’이라는 청와대의 결론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청와대가 제시한 ‘결론’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씩 꼬리를 밟아나가던 상황은 조 행정관과 김 국장의 ‘진실 공방’ 양상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윗선’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채동욱 찍어내기’의 ‘동기’를 갖고 있는 3곳을 놓고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우선 청와대일 가능성이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적용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채 전 총장이 대립각을 세웠고, 민정수석실 쪽에서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명박 청와대’ 출신인 조 행정관을 청와대가 ‘꼬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9월6일 보도 직후 대검찰청에 전화를 걸어 혈액형 증거가 나왔다며 채 총장의 사퇴를 압박한 사실(<한겨레> 9월14일치 보도 참조)은 보도 이전에 관련 정보를 쥐고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청와대가 서초구청에서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 채군의 주소지는 서울 강남구다. 보도 이후 공식 절차라면서 가족부를 담당하는 행정지원국이 아닌 감사담당관실 임아무개 과장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임 과장은 곽 전 수석, 이중희 민정비서관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이름도 거론된다. 조 행정관의 직속 상관으로 언제든 ‘대면 지시’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 비서관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린다. 청와대는 직속 상사라는 이유로 연계 의혹을 제기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다.

 

‘개인적 일탈’은 수사 가이드 라인?  

원 전 원장 쪽일 가능성도 있다. 원 전 원장이나 국정원 내 그의 세력이 채 전 총장의 약점을 잡아 수사를 압박하려 했을 가능성이다. 조 행정관이 청와대 쪽의 꼬리 역할을 한 게 아니라, 다른 라인을 통해 움직였을 가능성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게, 현재까지 드러난 이들이 모두 원 전 원장과 관련이 있거나 이명박 정권 쪽 사람들이다. 조 행정관은 이명박 서울시장 때 서울시에서 근무했고,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일하다 정부가 바뀐 뒤에도 남게 된 이례적인 케이스다. 조이제 서초구청 국장은 서울시와 국정원에서 원 전 원장의 직속 부하로 일했다. 안전행정부 김 국장은 경북 영천시 부시장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 때 안전행정부를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4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일했다. 그러나 조 행정관이나 조 국장처럼 원 전 원장과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다.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김 국장은 청와대 조사에서 조 행정관과 대질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억울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전 청와대가 따로 혹은 같이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검찰 수사 외압·축소 의혹은 전·현 정권에 두루 걸쳐져 있다. 국정원의 역할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면서 국정원 개혁 여론이 높아지자 직접 나섰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국정원 2차장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윗선’을 밝혀낼 수 있을까? 가족관계등록부 외에 출입국 기록, 차량 등록 정보, 채군의 초등학교 개인 기록, 혈액형 등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출된 만큼 관련 전산망 조회 등으로 밝혀낼 수 있는 대목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에서 되풀이돼온 ‘외압과 수사 방해’의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개인적 일탈’이라는 청와대의 주장이 검찰에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검찰이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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