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무슨 자격으로 '자유민주주의' 운운하나

[게릴라칼럼]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이 헌법수호의 첫걸음

13.12.09 08:20l최종 업데이트 13.12.09 08:2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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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에서 황찬현 감사원장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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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과 김진태 검찰총장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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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부정은 엄두도 못 내게 해달라"고 강하게 발언했지만 정작 박 대통령 스스로 이 발언을 실천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황찬현 감사원장의 임명동의안이 날치기 처리된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 공무원 법인카드로 유흥업소를 출입한 의혹이 불거져,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높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받아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결연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진태 검찰총장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부정세력은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전교조, 민주노총,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현 정권에 대한 비판세력으로, 흔히 정부와 보수세력에 의해 '종북세력'으로 규정된 이들로 보인다.

이명박 시절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좌파세력 방치는 직무유기이며, 종북좌파세력과 전쟁을 선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이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은 이명박정부 시설 '좌파 솎아내기'라는 명분으로 임기가 남은 정연주 KBS사장과 김정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강제로 쫓아냈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그 때 (종북 세력을) 상당 부분 걸러줘서 현 정권에 넘겨줬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집회, 결사, 언론, 출판의 자유로 대표되는 국민의 의사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작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자유민주주의에는 그 핵심 가치가 빠졌다고 볼 수 있다.

마치 1980년대 5공시절 전두환이 세운 민주정의당에 '민주'도, '정의'도 없었던 것이나, 1990년 3당 야합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이 국민들의 '민주'와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유신헌법이 자유민주주의?

6월 항쟁의 성과로 1987년 만들어진 현재의 헌법에는 정작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없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 표현이 우리 헌법에 처음 들어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고 만들어진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다. 민주주의나 정치학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도 유신헌법이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한 헌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체인 민주공화국이 '민주주의'를 보장하느냐 '자유민주주의'를 보장하느냐 하는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주의와 정치적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한다"(브리태니커) 또는 "근대 서구정치에서의 대의민주주의의 형태로, 보편적 참정권 '정치적 정당'간의 권력을 위한 선거를 통한 경쟁, '시민권'의 보호에 의해 구별된다"(네이버 사전, 사회문화연구소) 등으로 표현돼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정치적 평등을 지향하기 때문에 정당간의 권력 교체를 위한 공정한 선거가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돼 있을까?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요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그 구체적 핵심요소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이라고 설시하고 있다.[헌재 1990.4.2. 89헌가113 등]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의 모태는 독일헌법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로, 정작 독일연방헌법법재판소는 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가 포함시킨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구성요소로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문제는 보수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핵심가치는 빠뜨린 채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천사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중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정치사회학자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가 정리한 11가지 기본 요소이다.

래리 교수의 기준으로 보자면 박근혜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리고 래리 교수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나라 보수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부르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은 결코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될 수 없다.

래리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소 중 하나로 "군을 비롯하여 민주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기관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기관에 복종한다"를 제시하고 있다. 이 설명에 비추어 본다면 군대가 선출 권력에 복종하기는커녕 선출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그 상위 개념이었던 군사정권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또 자유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정치적 사상과 의견을 대변하는 복수의 정당과 그 정당을 통해 실현되는 공정한 선거에 의한 정치권력 교체 가능성을 필수적인 요소로 규정한다. 여기에 개개인의 실질적인 신념의 자유, 의견의 자유, 토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청원의 자유 등이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등의 대통령 선거 불법개입은 이 원리에 의하면 결코 자유민주주의와 양립될 수 없는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대로 하자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엄두도 내어서는 안 되는 짓'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청의 대선 개입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부정세력을 엄단한다고 하는 말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불과하다.

또 하나 정부의 정책과 반대되는 주장을 말한다고 '종북세력'으로 몰아 정당해산을 요구하는 것 역시 자유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 보장을 법의 지배원리로 함은 물론 정치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합진보당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해 진행하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된 복수 정당의 존재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제1척도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이 먼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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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독재 심판' 거리행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지 65년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국정원내란음모정치공작공안탄압규탄대책위,범민련탄압대응공대위 주최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서울광장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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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설립의 자유가 보장된 복수정당제와 공정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가능성, 그리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선출 권력에의 복종을 빼면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권선거, 금권선거, 부정선거가 판을 친 3·15부정선거의 최종책임자인 이승만 정권은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수 없으며, 선출되지 않은 군사정권이 헌법 자체를 부정했던 5·16쿠데타의 주범인 박정희는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일뿐이다. 12·12와 5·17쿠데타로 집권하고, 선출되지 않은 또 다른 권력인 안기부와 하나회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 전두환 신군부 역시 자유민주주의의 반역자들이다. 선거에 의하면 만들어진 여소야대 국회를 정치적 야합으로 뒤집었던 민자당 정권 역시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로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부정 세력을 엄두도 못 내게 하려면 "3·15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이승만 정권을 반자유민주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전방의 군부대를 동원하여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유신헌법으로 종신집권을 획책한 박정희 정권을 위헌세력으로,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신군부 정권을 민주주의 부정세력으로 선언"하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생긴다.

나아가, 자신과 직접 관련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정보기관과 군이 선거에 개입한 지난 대선의 선거 부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의 적이자 헌법 파괴 행위'임을 선언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수호를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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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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