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 칼럼 썼더니 김기춘이 직접 전화
방송으로 인기 끌어 공천 받을 생각없다"[인터뷰] '최고의 전략가' 꿈꾸던 이철희는 왜 방송인이 됐나
▲ jtbc <썰전>,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 하니TV <시사게이트>,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쑤시개> 에 고정출연중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 |
ⓒ 이희훈 |
"사실 내가 방송인으로 살기엔 흠결이 많다. 경상도 촌놈이라 발음이 또박또박 안 된다. 억양도 세다. 그런데 왜....? 아마도 뭔가 우리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고, 딱히 우리 편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공정하지도 않은, 그런 느낌 때문 아닐까?"
'영일 촌놈' 이철희가 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콜'해도 '오케이'를 날리던 '여의도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화가 먹통이 됐고, "나 10분밖에 시간 없는데" "왜?" "용건만 간단히" "그 시간은 어렵겠는데?"가 됐다. 여의도에선 언제나 기자가 갑인데, 뭐랄까, '갑을'이 바뀐 느낌이랄까? 무얼 하느라 그리 바쁘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나 방송 중이야."
"ㅠㅠ"
지난해 대선 때는 "출격해 싸워야 한다"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종편에 수시로 출연했다. 너무 많이 출연한다고 욕깨나 먹었다. 민주당이 종편출연 금지 해제를 선언하기 전까지 당내 인사들은 "이철희가 저렇게까지 해야 되냐?"며 볼멘소리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묵묵했다. 욕 먹어도 출연했다. 웃으면서 까칠하게 말하니 더 무섭다는 평가도 많았다. 평소 그의 노선인 '까칠한 진보'는 종편에서도 계속됐다.
"방송에 출연해 떠들기 시작하니까 안 만나 주는 놈이 없더라."
한국 정치에서 '최고의 전략가'가 되고 싶었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정치에 질려 여의도를 떠났지만 방송에서 뜬 뒤로는 다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행복한 듯 보였다.
지난 7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이 소장은 14일부터 시작될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매일 오후 6시) 준비로 바빴다. 방송 출연 1년여 만에 2시간짜리 생방송 시사프로 단독 진행을 맡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잘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했지만 무언가 다부진 자세로 새로운 출격을 준비 중인 듯했다.
다음은 이철희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진영 논리 대변하지 않겠다
▲ "종편에 시사프로가 많아지면서 공중파의 정치뉴스가 많이 줄었다. 그것도 참 재밌는 현상이다" | |
ⓒ 이희훈 |
- 지금 몇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나.
"jtbc <썰전>,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 하니TV <시사게이트>,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쑤시개>…. 현재 고정은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많이 줄였다. 이따금씩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는 많이 정리했다. 칼럼은 <한겨레>에 3주 1회, <경향신문> 4주 1회, <내일신문> 4주 1회. 또, 서울디지털대학교 강의, 여러 강연들."
- 정확한 직업이 뭔가.
"시사평론가. 딱히 정치만 다루는 것은 아니니까 정치평론가라기보다는 시사평론가 정도 아닐까 싶다. 왜 내 직업에 불만 있나? 하하."
-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뭔가.
"<썰전>은 이철희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프로니까 애착이 간다. 토론 프로, 시사 프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니 상당히 애정이 많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돌직구쇼>는 5명의 캐릭터쇼인데, 매일 시사 관련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뉴스 전달과는 방식이 다르다. 새로운 방식의 시사정보 프로그램이랄까. 공을 많이 들이는 프로다. 교통방송 라디오는 내 이름 달고 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이니까 그것도 애정이 간다.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는 정통시사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퇴근길에 시사 문제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2시간을 혼자 이끌고 가야 하니까 부담이 제일 크다. TV는 영상매체라 감성적으로 소구되지만, 라디오는 독립적 공간에서 진행자와 청취자가 1 대 1로 만나는 거라 청취자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그 접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 이렇게 많은 방송프로에 출연하면서 갖고 있는 원칙은 뭔가.
"우리 사회에는 진영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어떤 진영에도 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뭐가 됐든 사안별로 판단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좀더 소프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거리에 비유하자면, 좀 먹을 수 있게 만들어서 전달하려고 한다. 생걸로 그냥 디미는 게 아니라. 어려운 얘기를 딱딱하게 마구 전달하는 것은 어쩌면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족적일 수 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소화가 안 된다.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막 싸우는 듯한 프로그램, 격하게 논쟁하는 프로는 싫다."
- 왜 싫은가.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은 진영 논리에 포획된 사람이 아니라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인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도 몇 가지 원칙을 갖고 방송한다. 첫째, 진영 논리를 대변하지 말자. 이 말은 내가 진영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건 아니다. 또 같은 진영이라고 해서 편들어줄 생각은 없다. 이런 내 원칙이 방송 프로에서 온건하거나 합리적으로 보여서 새로운 형식의 시사프로에 많이 출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방송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의식은 있을 게 아닌가.
"같은 편은 결속 시키면서 특정 진영은 흥분하게 만들면서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방송 스타일이었다면 아마도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난 그게 방송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무언가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어떤 목표를 위해 그리고 또 어떤 목적을 위해 대중들을 선동하거나 추동, 활용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판단하기로는 대체로 그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중파가 종편과 뉴스 경쟁이 안 되는 이유
▲ "공중파는 정치 평론가들이 들어갈 시장이 별로 없다. 그나마 있는 게 라디오 7~8분짜리 정세 분석 코너인데, 이걸로는 생존이 안 된다" | |
ⓒ 이희훈 |
- 따지고 보니 대체로 종편이다. 왜 종편에 편중돼 있나.
"종편이 생긴 뒤로 선거나 정치 이야기가 종편의 블루오션이 됐다. 그 시장을 채워줄 사람이 누구인가. 기자들만으로는 재미가 없으니까 평론가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평론가들이 채워졌다고 볼 수 있다. 공중파는 정치 평론가들이 들어갈 시장이 별로 없다. 그나마 있는 게 라디오 7~8분짜리 정세 분석 코너인데, 이걸로는 생존이 안 된다. 직업으로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종편 이후에는 생업이 가능하게 됐다. 종편 4사가 모두 시사프로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 괜찮은 평론가들은 여기저기 막 출연하는 일이 생긴 거다. 공중파 시사프로 놔두고 종편만 나간 거냐? 그건 아니다. 종편에 시사프로가 많아지면서 공중파의 정치뉴스가 많이 줄었다. 그것도 참 재밌는 현상이다."
- 종편에 영향 받은 공중파 방송들이 오후 시간대 시사프로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종편과 공중파 방송 모두 시청자 잡기에 열혈 경쟁 중이다. 그런데 내가 해보니, 주로 오후 시간대는 주로 종편뉴스 시간대다. 이때는 종편 시청률이 잘 나온다. 같은 시간대 공중파는 대개 재방송을 튼다. 그러니 경쟁 자체가 잘 안 된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냐면, 오전에는 아침마당 류와 막장 드라마 때문에 공중파로 채널이 가는데, 그러다가 오후 들어 어린이 만화프로 하는 그 타이밍까지는 종편 타이밍이다. 저녁시간대는 대체로 공중파 시간대고, 한밤이 되면 다시 종편으로 넘어온다. 밤 11시 이후엔 종편 시청률이 세다. 그렇게 되니까, 공중파들이 전부 이 오후 시간대를 종편에게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사를 갖고 경쟁에 뛰어든다고 본다. 그런데, 공중파의 원래 습성을 버리지 않는 한 종편과는 경쟁이 안 된다고 본다."
- 듣는 공중파 피디들이 굉장히 불쾌할 것 같은데?
"기존에 해왔던 방식대로 점잖게 뉴스를 판다? 이러면 경쟁이 안 될 것이다. 종편 뉴스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해석된 뉴스에 익숙하다. 주장을 갖고 서로 대립하면서 논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중파 같은 기계적 중립? 종편엔 그런 것 없다. 맛에 비유하자면, 단맛, 짠맛, 쓴맛 이렇게 아주 분명한 음식을 주는 게 종편이다. 반면 공중파는 소금도 덜 치고 약간 밋밋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경쟁이 되겠나. 공중파가 원래 가진 습성을 버릴 수 있을까? 원래 습성을 버리느냐, 마느냐 그 갈림길에 있다고 본다. 공중파가 종편 시사프로에 대해 경쟁과 위기의식이 생겼지만 과연 공중파가 내용까지 바꿀 것인가, 그건 미지수다."
- 그 막강한 공중파가 왜 종편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나.
"내가 미디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공중파가 계속 큰소리치고 느긋하게 있으면 얼마 안 가 미디어 환경 자체가 바뀔 것이다. 종편 4개사의 경쟁이 치열해 2개로 좁혀진다고 해도 만약 이 시장이 생존 가능하다는 판단이 생기면 자본이 들어오게 돼 있다. 그러면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고, 지금보다 더 투자 여력이 커지면 종편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온다고 본다. 공중파 위기의식의 곧 현실로 와 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내 얘기만은 아니다. 최근 공중파에서 일하는 기자나 피디 후배들을 만나면 종편에 대해 얘기한다. <썰전>, 그것만큼은 공중파가 인정한다, 정말 잘 만들었더라 한다. <썰전>의 효과가 분명히 있다."
-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비결이 뭔가?
"스타? 글쎄…. 지난 대선 때는 진짜 바빴다. 거의 연예인 못지않은 스케줄이었다. 분 단위로 쫓아다녔으니까. 내가 연예인이었다면 정말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내가 스타라는 생각을 해본 일은 없다. 그리고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 지향은 최고의 전략가, 국회의원은 매력 없다"
▲ "아마도 내가 방송을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방송에도 흐름과 유행이 있으므로. 길면 내후년? 그때까지 방송할 것이다. 정치를 다시 할지는 그때 가서 판단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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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적을 갖고 열심히 정치하더니 어느 날 문득 방송인이 됐다. 왜 정치를 떠났나.
"정치 쪽에서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니까 여기가 싫다, 이렇게 거리감이 생기던 차에 방송을 좀 해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생계형도 아니고 일단 시간이 있었으니까 해본 거다. 하다 보니 자꾸 늘어났고 다른 걸 못하게 되면서 방송에 매달리게 된 것 같다. 대선 직후 이 일을 계속 할 거냐 말 거냐 고민이 있었다. 그때 내린 판단은 조금 더 하자는 것이다. 마침 그 즈음 내 말에 공감하는 대중이 조금씩 생겼다. 방송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 싶었다. 결정적으로 <썰전>에 출연하면서 많은 변화가 왔다."
- 만족하나?
"새로운 영역이니까. 성취감도 좀 있다. 정치판에 있으면 어떤 정책과 노선, 메시지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세상에 영향을 줄까, 이런 고민을 하는데, 방송은 그런 매력은 없다. 방송에서 내가 한 말 때문에 어떤 결정이 뒤집혔다 이런 건 없다. 다만 내 판단의 잣대, 해설자료로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스탠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팬카페도 생겼다. 이들이 왜 나를 좋아할까 생각해 보니 대체로 남 얘기도 들어주는 진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자기 얘기하는 사람, 뭐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전사의 캐릭터는 아니니까. 방송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는 그래도 이철희, 합리적이다, 귀엽다 뭐 이런 느낌."
- 방송에 불만은 없나.
"정치처럼 위계질서가 없으니 오히려 편하다. 갈등할 것도 별로 없다. 정치판 안에서의 게임에 비한다면 훨씬 나이스하다. 누굴 잡아야 내가 이긴다, 뭐 이런 스트레스는 없으니까. 정치권 안에서 받던 스트레스에 비하면 마음도 편하고 수익도 훨씬 좋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수익이 중요치 않다고 하는 것도 가식이라고 생각한다."
- 원래 최고의 전략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지 않았나?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유보했다. 왜냐하면 방송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진영 논리를 대변하지 말자, 이것도 있었지만,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활용하지는 말자, 또 방송에서 성과를 낸 뒤 허겁지겁 정치로 달려가지 말자, 방송은 방송대로 충실히 하자, 뭐 대충 이런 거다. 아마도 내가 방송을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방송에도 흐름과 유행이 있으므로. 길면 내후년? 그때까지 방송할 것이다. 정치를 다시 할지는 그때 가서 판단할 것이다.
다만, 국회의원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내 지향은 최고의 전략가다. 정권교체에 나름대로 전략적 구상을 갖고 움직이고픈 기대가 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원이 아니면 그런 기회를 안 준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을 뿐이다. 좋은 국회의원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역할은 별로 탐나지 않는다. 결론을 2년 뒤 내릴 생각인데 그때까지 아니 그 전까지도 거짓말은 안할 생각이다. 방송 잘해 인기 끌고 그걸 공천 받는 데 써야겠다,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 에이~, 정치가 방송보다 낫지 않나?
"정치는 본래 하는 맛이 좋다. 직접 당사자로 뛰는 해설자로 뛰는 것보다 훨씬 재밌다. 그러나 그건 때가 있는 것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에 영향을 주려고 하지 않지만 내가 옳다고 하는 바를 얘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에 기여한다면 거부할 리 없다."
- 방송을 통해 영향의 정치를 하는 셈인데 피드백은 좀 있나.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왕실장에 대한 생각>이 제목이었는데, jtbc <썰전> 녹화 중에 전화가 여러 차례 왔다. 앞번호가 770으로 시작되는 청와대 번호였다. 녹화 끝나고 연락해보니 청와대 비서실장실 보좌관이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통화를 원한다는 거였다. 몇분 뒤 통화가 됐는데, 김기춘 실장이 '칼럼 잘 읽었다.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냐, 항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좋게 봐줘 고맙다' 이렇게 덕담하고 끊었는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그런 자세는 좋다고 본다. 자신에 대한 비판인데 직접 전화까지 하고. 자세는 좋았지만 상당히 노회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김기춘 실장과 통화하고 일 주일 후에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떠들고 다니는 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여서 일 주일 뒤에 말했는데, 그건 내 스스로 객관화 시키는 작업이었다."
- 방송 출연 1년 만에 라디오 저녁 방송 데일리 앵커를 맡게 됐다. 어떻게 할 계획인가.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이다. 매일 오후 6시 10분에 시작하는데, 이방송에서 내가 누구 편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걸 거부하지는 말자, 이런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본다. 또 출연자를 죄인 다루듯 하고 싶지 않다. 정치인에게 비위 맞출 생각도 없다. 그러나, 사람 불러다 놓고 전화로 연결해서 막 취조하듯이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영일 촌놈' 이철희가 본 매일 저녁 시사 스케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 방송 경력도 짧은데 왜 발탁됐을까.
"사실 내가 방송인으로 살기엔 흠결이 많은 사람이다. 일단 경상도 촌놈이라 발음이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안 된다. 억양도 세다. 방송 전문가들이 보기에 영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요새 방송 추세가 약간 흠결 있는, 아주 뛰어난, 그런 사람보다는 약간 뭐랄까... 아주 잘난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 얘기 잘 들어줄 것 같고 또 우리편이라는 생각은 딱히 안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공정하지도 않는, 그런 느낌 때문 아닐까?"
"정치에 너무 화가 나서 그만두었다"
▲ "차이와 갈등을 전제로 산적한 현안을 풀어가는 게 정치이고,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려는 게 정치인의 기본자세인데 연고주의, 끼리끼리 그런 게 너무 싫었다" | |
ⓒ 이희훈 |
- 정치에서 가장 신물난 건 무엇이었나.
"사람 관계가 제일 싫었다. 난 까칠한 성격이다. 기자들과도 얘기하다가 틀리면 막 '쫑코'주고 그러지 않나. 쏴붙이고. 내가 좀 그런 편이다. 나는 최고의 전략가를 꿈꾸는 만큼 어떤 정치의 결정권자들에게 좋은 옵션이나 대안을 줘서 좋은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정치는 일 외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작동한다. 무슨 안을 내면 그 안 자체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쟤가 왜 저걸 냈지? 무슨 배경이 있는 거지? 그런 것부터 생각한다. 차이와 갈등을 전제로 산적한 현안을 풀어가는 게 정치이고,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려는 게 정치인의 기본자세인데 연고주의, 끼리끼리 그런 게 너무 싫었다."
- 정치 그만둘 때 미련은 없었나.
"굉장히 화가 나 있어서 미련은 없었다. 후후. 지난 총선·대선 나한테는 이기는 전략이 있었다.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야권의 전략을 갖고 있었는데 그걸 쓸 기회를 나에게 주지 않았다. 아주 화가 난 상태에서 민주당이 너무 미워서 떠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은 없었다. 그 화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서 뭘 하기가 싫었다. 그러니 지금도 크게 미련은 없다."
- 질려서 나갔다는 결론인데, 한 발 떨어져 한국정치를 보니까 어떤가.
"평론이 갖는 한계 때문에 우울해질 때가 있지만 두세 발 떨어져 있으니까 일반인의 정서에 훨씬 공감이 많이 된다.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정치를 바라보려는 게 훨씬 잘 된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후진지 무능한 정치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다. 정치인끼리 뭔가 도모하니까. 국민은 없고. 사실 민주국가라면 정치가 길거리에 넘쳐 흘러야 한다. 그런데 한국정치는 자꾸 주변화되고 패권화된다. 앞으로 그림을 더 크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정치의 효용에 대해 깨닫고 발견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은 대중이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건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기보다는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치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MB에 대한 반사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은 판을 벌여서 정국을 시끄럽게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니 좀 안정적으로 관리 중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지지를 끝까지 지탱할 동력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선 지금 당장 내 삶이 답답해서 참고 있는 거지, 만약 정부나 대통령이 해답을 못 주면 대중은 곧바로 그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무서운 대중이 되겠지. 박근혜 대통령의 낡은 방식의 정치, 얼마나 용인할까 회의적이다."
- 정부나 대통령을 향해 대중이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묻게 될까.
"첫 번째 파열음이 진영 복지부 장관의 사퇴 아닌가. 앞으로 제2, 제3의 진영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새누리당 안에서 개혁적 보수를 지향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김기춘-남재준-서청원-홍사덕, 이걸 2+2체제라고 하던데, 얼마나 갈까 걱정스럽다."
- 한국정치에 하고 싶은 말은?
"선거법이나 정치관계법을 바꿔야 한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정치관계법과 노동법 바꾸는 일이다. 그래야 정치가 보통사람들의 정치가 될 수 있다. 보통사람들이 자기 삶을 바꾸기 위해 정치의 효용을 발견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정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정치로 뭐가 해결이 안 된다. 정치인들도 천박하고 막가파다. 정치와 정당은 스스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늘 했던 말,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 대중이 얼마나 집단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주느냐, 그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행동을 통해 정치인들을 대거 숙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숙청의 시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본다."
오마이뉴스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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