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28 01:11수정 : 2014.05.28 09:10
|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27일 오후 세월호 국정조사 합의가 지연돼 본회의가 열리지 못한 국회를 방문해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이완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뒷모습)과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오른쪽 뒷모습) 등 여야 대표들에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유가족들,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새누리 버티기
“조금만 기다려? 그러다 우리 애들 다 죽었어…”
‘세월호 유가족’들의 뜨거운 눈물을 보면서도, 새누리당은 그저 ‘버텼다’.
28일 12시30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세월호 유가족 70여명이 지친 표정으로 ‘여야 합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유족들이 머물러 있는 대회의실과, 여야 의원들이 협상 중인 사무실을 오가며 상황을 알렸다. 박 원내대표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4시간째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전했다. 세월호 침몰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국회에 놔두고, 여당의 원내대표가 ‘잠수’를 탄 것이다. 여야 협상장엔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김영록 새정치연합 원내수석부대표,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조사 특위 여야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김현미 새정치연합 의원 4명이 지루한 밀고당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야당은 국정조사 계획서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증인’을 명시하자고 요구했지만, 여당은 여전히 “전례 없다”며 특위를 구성한 뒤 증인을 채택하자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이 12시간 전 국회를 방문했을 때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 130여명은 27일 낮 국회를 찾았다.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계획서가 채택되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여야는 본래 이날 오전 국조 대상과 범위, 시기 등 특위 활동을 명시한 계획서를 합의한 뒤 오후 본회의를 열어 이를 의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증인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해소되지 않았고 실무협상은 성과없이 끝났다. 유가족들은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모여 ‘좋은 소식’을 기다렸다.
오후 2시30분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 등 여야 지도부가 유족을 만나러 왔다. 유가족 대표가 “서로가 당리당략을 따지는 것 같은데, 언론에 나온 대로 김기춘 비서실장 증인채택 때문에 안 되는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물었다. 여야 대표로부터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이유를 들은 유족들은 울분을 터뜨렸다. “특검·국조 수용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다. 합의해라”, “대통령뿐 아니라 사고에 관련된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돼야 한다”, “(의원들은) 못 알아듣는 척하지 마라. 당장 대책을 내놓아라.”
|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면담도중 유가족들의 국정조사 계획서 여야 합의 요구에 면담장을 나서고 있다. (서울=뉴스1) |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여야가 약간의 입장 차이로 지금까지 진행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서 죄송하다”고 했다. 듣고 있던 한 유족이 “그 설명이 불쾌하다. 작은 차이라면 새누리당이 양보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 대표인 유경근씨는 “대통령 본인도 책임을 인정했다. 성역 없는 수사는 당연히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네 가지를 요구했다. △즉시 국조특위를 가동해 진상규명에 나서고 △여야가 주장하는 모든 조사대상 증인과 자료를 공개하고, 성역 없는 국조에 임하며 △본회의와 국조특위를 동시에 열고 △국조특위는 곧바로 진도로 내려가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최우선적으로 청취할 것 등이었다. 유족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김재원·조원진·김영록·김현미 의원 4명이 자리를 옮겨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보다 못한 유족들은 협상장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김재원 의원이 추가협의가 필요하다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유족들은 “아까도 도망가지 않았느냐”며 김 의원을 야당 의원들과의 협상 장소로 다시 밀어넣기까지 했다. 팽목항 바닷가에 앉아 하염없이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다를 바라보던 유족들의 기다림은 계속됐다. “국회가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보러 왔는데, 정작 본회의는 열리지도 않고 우릴 이렇게 마냥 기다리게 한다. 애들도 이렇게 마냥 기다렸을 거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다.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그러다 우리 애들 다 죽었어.”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가 울먹였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 박영선 원내대표가 유가족들에게 말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로부터 지금 전화가 왔다. 아침 6시30분에 충남 서천에 내려가야 해서 못 온다고 한다.” 비슷한 시각, 경기도 안산에서 유가족 16명이 더 국회를 찾았다. 한 유가족은 “열받아서 왔다. 속이 터져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팽목항에서처럼 긴밤을 외롭게 지새웠다.
하어영 김경욱 서보미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