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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사퇴가 순리"... <조선일보>답다
[주장] 박근혜 정부의 '흑기사' 자임한 국정원... 지방선거 승리에는 걸림돌
14.03.12 10:22
최종 업데이트 14.03.12 10:29남재준 국정원장은 과연 자진사퇴할 것인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유감' 발언 이후 보수언론은 사설을 통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합신당도 남재준 해임당위론을 펼치고 있고,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표현까지 등장하면서 국정원장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은 1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개혁)을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사실 확인이 되는 대로 책임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 전 회의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다"면서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 사과문 '대독'한 박 대통령
여론의 흐름에 민감한 보수언론이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11일 치 사설 '박 대통령, 남재준 국정원장 문책하고 국정원 개혁하라'를 통해 "국기(國紀)가 흔들리는 상황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검찰 수사 결과 남 원장 등 수뇌부가 증거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 남 원장의 문책을 강조했다.
<중앙일보> 역시 11일 치 사설 '남재준 국정원, 철저한 쇄신 불가피하다'에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국가정보기관이 연루된 증거 조작 사건을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본다"면서 박 대통령 발언에 동의를 표시한 뒤 남 원장의 책임지는 자세를 강조함으로써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기존 국정원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던 이들 보수언론의 모습은 3월 10일을 기점으로 180도 달라졌다. 이들의 변신은 화끈했다. 직전의 주장과 달리 국정원의 전면적 '쇄신'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 목소리로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0일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해 '국정원 증거조작 논란 유감'을 표명한 날이다. 그 전날인 9일에는 국정원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국정원 사과성명 발표→ 박 대통령 유감 표명'으로 이어진 이후부터 보수언론에서 갑작스레 남 원장 자진사퇴 촉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유감'을 잘못 해석한 듯하다. 왜냐하면 10일 박 대통령의 국정원 관련 발언은 전날 발표된 국정원 '사과 성명'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문구를 보면 전날 나온 국정원 사과성명을 다음 날 아침 대통령이 '대독'한 수준이다.
먼저 10일 박 대통령의 수석비서관 회의 자리에서의 국정원 관련 발언을 살펴보자. 3월 10일 회의에서 대통령 모두발언은 8분 10초간 진행됐고, 국정원 발언은 2분 14초부터 2분 54초까지 40초 동안 이뤄졌다. 전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시 공무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서 증거자료의 위조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정확히 밝혀서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입니다." (3월 10일 수석비서관 회의 국정원 관련 발언 전문)
이어서 전날인 9일 저녁 국정원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성명 내용을 보자. 앞 부분에는 증거조작 논란이 발생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설명돼 있으며, 논란에 대한 사과 및 국정원의 다짐은 사과 성명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그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국정원은 조속히 검찰에서 진실 여부가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거듭나는 국정원이 되겠습니다." (3월 9일 국정원 발표 '대국민 사과성명' 중)
박 대통령 발언과 국정원 사과성명에서 사용한 단어가 매우 유사하다. 논리 전개도 '유감이다→ 논란의 실체를 밝혀 진실을 규명하겠다→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책임을 묻겠다'로 동일하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표현도 양쪽에 동일하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10일 오후 검찰은 갑작스럽게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남재준 '자진사퇴'를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조선>
보수언론 중 가장 먼저 '남재준 사퇴' 주장을 편 것은 <조선일보>다. 이 신문은 10일 치 사설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를 통해 남 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제목은 책임지라는 내용이지만 논리 전개가 묘하다. 잘못했으니까 알아서 그만두라는 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설로서는 이례적으로 '신념'에 대한 일장 연설이 나온다. 남 원장의 '과잉 신념'이 왜 문제인지를 설명하고 난 뒤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고 거취를 결정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호되게 꾸짖어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실제 '남재준 국정원'은 북한 장성택 숙청 사실을 포착하고,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실을 적발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면서 남 원장 재직 중 치적을 열거한 뒤 "지금 남 원장의 국가 안보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긍정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어 '신념'에 대한 대목이 자세히 등장한다. 사설은 "그러나 '신념'이란 합리적 판단과 엄격한 자기 통제라는 다른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과잉 신념은 반드시 큰 화(禍)를 부르게 돼 있다"면서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정원 증거 위조 논란이 마치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 때문인 것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조선일보>는 "이번 증거 위조 파문도 국정원 지휘부의 간첩 색출 신념에 자극받은 수사팀이 적법(適法) 절차의 철칙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의도성이 없었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순리'(順理)라는 말과 함께.
송년회 때 '양양가' 떼창한 남재준, 과연 물러날까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은 남재준의 국정원에 신세를 톡톡히 졌다. 취임 첫해 '부정선거' 여론이 거셀 때면 국정원은 어김없이 등장해 해결사 노릇을 하고는 사라졌다. '무명의 헌신' 역할에 충실했다. 지난해 검찰(당시 검찰총장 채동욱)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원세훈·김용판 등을 기소해 여론이 악화되자 국정원은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NLL 대화록'을 전격 공개, 여론을 전환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검찰의 기소시점은 지난해 6월 14일, 대화록 공개는 6월 24일에 이뤄졌다.
'부정선거 촛불시위'가 거세게 진행되던 지난해 8월 말,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렸다. 국정원은 2010년부터 이석기 의원을 내사해 왔다고 밝혔지만, 시점은 역시 묘했다. 지난해 제1야당 대표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하며 서울시청 앞 '노숙투쟁'을 시작한 날이 8월 27일이었고,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개시한 날은 8월 28일이었다. 박 대통령 위기의 순간에는 늘 남재준의 국정원이 움직였다.
남 원장은 지난해 국정원 송년모임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라는 내용이 담긴 독립군 군가 <양양가>(襄陽歌)를 떼창했다고 전해졌다. 지난해 매주 열렸던 대규모 촛불시위 때문에 집권 정당성이 휘청였던 박 대통령 입장에서 남 원장의 활약은 독립군 이상이었다.
시간은 흘렀다. 지금은 박 대통령을 겨냥한 '촛불'의 힘은 다소 약해졌다. 대통령이 코너에서 빠져나오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남 원장이 우연치 않게 코너에 몰리게 됐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국민 성명을 '대독'함으로써 그에 대한 신뢰를 보냈다. 나름 예의를 갖춘 셈이다.
이제 곧 취임 후 첫 전국 단위 선거가 다가온다. 야당 입장에서 남 원장 사건은 대형 호재다. 증거까지 조작하는 오만한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불붙기 시작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입장에서 '남 원장의 사임'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 때문이다. 사설을 통해 뜬금없이 그의 '신념'을 인정하고 재직 중 업적을 나열한 뒤, 그럼에도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지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주장한 <조선일보>의 사설이 현 상황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 시각으로 해석된 이유가 말이다.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유감' 발언 이후 보수언론은 사설을 통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합신당도 남재준 해임당위론을 펼치고 있고,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표현까지 등장하면서 국정원장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은 1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개혁)을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사실 확인이 되는 대로 책임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 전 회의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다"면서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 사과문 '대독'한 박 대통령
▲ 국정원 사과성명을 '대독'하는 박 대통령 3월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증거조작 논란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 |
ⓒ 유투브 갈무리 |
여론의 흐름에 민감한 보수언론이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11일 치 사설 '박 대통령, 남재준 국정원장 문책하고 국정원 개혁하라'를 통해 "국기(國紀)가 흔들리는 상황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검찰 수사 결과 남 원장 등 수뇌부가 증거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 남 원장의 문책을 강조했다.
<중앙일보> 역시 11일 치 사설 '남재준 국정원, 철저한 쇄신 불가피하다'에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국가정보기관이 연루된 증거 조작 사건을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본다"면서 박 대통령 발언에 동의를 표시한 뒤 남 원장의 책임지는 자세를 강조함으로써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기존 국정원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던 이들 보수언론의 모습은 3월 10일을 기점으로 180도 달라졌다. 이들의 변신은 화끈했다. 직전의 주장과 달리 국정원의 전면적 '쇄신'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 목소리로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0일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해 '국정원 증거조작 논란 유감'을 표명한 날이다. 그 전날인 9일에는 국정원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국정원 사과성명 발표→ 박 대통령 유감 표명'으로 이어진 이후부터 보수언론에서 갑작스레 남 원장 자진사퇴 촉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유감'을 잘못 해석한 듯하다. 왜냐하면 10일 박 대통령의 국정원 관련 발언은 전날 발표된 국정원 '사과 성명'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문구를 보면 전날 나온 국정원 사과성명을 다음 날 아침 대통령이 '대독'한 수준이다.
먼저 10일 박 대통령의 수석비서관 회의 자리에서의 국정원 관련 발언을 살펴보자. 3월 10일 회의에서 대통령 모두발언은 8분 10초간 진행됐고, 국정원 발언은 2분 14초부터 2분 54초까지 40초 동안 이뤄졌다. 전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시 공무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서 증거자료의 위조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정확히 밝혀서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입니다." (3월 10일 수석비서관 회의 국정원 관련 발언 전문)
이어서 전날인 9일 저녁 국정원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성명 내용을 보자. 앞 부분에는 증거조작 논란이 발생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설명돼 있으며, 논란에 대한 사과 및 국정원의 다짐은 사과 성명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그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국정원은 조속히 검찰에서 진실 여부가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거듭나는 국정원이 되겠습니다." (3월 9일 국정원 발표 '대국민 사과성명' 중)
박 대통령 발언과 국정원 사과성명에서 사용한 단어가 매우 유사하다. 논리 전개도 '유감이다→ 논란의 실체를 밝혀 진실을 규명하겠다→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책임을 묻겠다'로 동일하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표현도 양쪽에 동일하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10일 오후 검찰은 갑작스럽게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남재준 '자진사퇴'를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조선>
▲ 남재준 '신념'은 인정하지만 국정원 증거조작 논란을 남재준 원장의 '과잉 신념' 때문이라고 해석한 <조선일보> 3월 10일 치 사설 | |
ⓒ 조선일보PDF |
보수언론 중 가장 먼저 '남재준 사퇴' 주장을 편 것은 <조선일보>다. 이 신문은 10일 치 사설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를 통해 남 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제목은 책임지라는 내용이지만 논리 전개가 묘하다. 잘못했으니까 알아서 그만두라는 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설로서는 이례적으로 '신념'에 대한 일장 연설이 나온다. 남 원장의 '과잉 신념'이 왜 문제인지를 설명하고 난 뒤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고 거취를 결정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호되게 꾸짖어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실제 '남재준 국정원'은 북한 장성택 숙청 사실을 포착하고,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실을 적발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면서 남 원장 재직 중 치적을 열거한 뒤 "지금 남 원장의 국가 안보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긍정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어 '신념'에 대한 대목이 자세히 등장한다. 사설은 "그러나 '신념'이란 합리적 판단과 엄격한 자기 통제라는 다른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과잉 신념은 반드시 큰 화(禍)를 부르게 돼 있다"면서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정원 증거 위조 논란이 마치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 때문인 것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조선일보>는 "이번 증거 위조 파문도 국정원 지휘부의 간첩 색출 신념에 자극받은 수사팀이 적법(適法) 절차의 철칙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의도성이 없었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순리'(順理)라는 말과 함께.
송년회 때 '양양가' 떼창한 남재준, 과연 물러날까
▲ 사퇴 압박받는 남재준 국정원장 국가정보원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여당 내부에서 조차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촉구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 |
ⓒ 남소연 |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은 남재준의 국정원에 신세를 톡톡히 졌다. 취임 첫해 '부정선거' 여론이 거셀 때면 국정원은 어김없이 등장해 해결사 노릇을 하고는 사라졌다. '무명의 헌신' 역할에 충실했다. 지난해 검찰(당시 검찰총장 채동욱)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원세훈·김용판 등을 기소해 여론이 악화되자 국정원은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NLL 대화록'을 전격 공개, 여론을 전환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검찰의 기소시점은 지난해 6월 14일, 대화록 공개는 6월 24일에 이뤄졌다.
'부정선거 촛불시위'가 거세게 진행되던 지난해 8월 말,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렸다. 국정원은 2010년부터 이석기 의원을 내사해 왔다고 밝혔지만, 시점은 역시 묘했다. 지난해 제1야당 대표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하며 서울시청 앞 '노숙투쟁'을 시작한 날이 8월 27일이었고,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개시한 날은 8월 28일이었다. 박 대통령 위기의 순간에는 늘 남재준의 국정원이 움직였다.
남 원장은 지난해 국정원 송년모임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라'라는 내용이 담긴 독립군 군가 <양양가>(襄陽歌)를 떼창했다고 전해졌다. 지난해 매주 열렸던 대규모 촛불시위 때문에 집권 정당성이 휘청였던 박 대통령 입장에서 남 원장의 활약은 독립군 이상이었다.
시간은 흘렀다. 지금은 박 대통령을 겨냥한 '촛불'의 힘은 다소 약해졌다. 대통령이 코너에서 빠져나오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남 원장이 우연치 않게 코너에 몰리게 됐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국민 성명을 '대독'함으로써 그에 대한 신뢰를 보냈다. 나름 예의를 갖춘 셈이다.
이제 곧 취임 후 첫 전국 단위 선거가 다가온다. 야당 입장에서 남 원장 사건은 대형 호재다. 증거까지 조작하는 오만한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불붙기 시작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입장에서 '남 원장의 사임'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 때문이다. 사설을 통해 뜬금없이 그의 '신념'을 인정하고 재직 중 업적을 나열한 뒤, 그럼에도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지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주장한 <조선일보>의 사설이 현 상황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 시각으로 해석된 이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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