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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박 대통령 ‘누구의 딸’ 말 듣지 않을 기회 놓쳐”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ㆍ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침묵한 건 민주주의 위기
ㆍ검찰 강탈·내부 자해까지… 국민이 각성하고 나서야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79)는 1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시국 상황에 대해 “불행한 역사는 틀림없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독재 체제에서 겪었던 일들은 민주화가 되면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안이한 생각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리는 그는 독재정권 아래서 양심수와 시국사범을 변호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공동피고인으로 기소돼 옥고를 치르는 등 시국사건의 피고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14일 법조인 생활 55주년을 맞아 기념선집 4권을 발간했다.

한 변호사는 현 시대를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로 규정했다. 그는 국가정보원 정치·선거개입 사건을 둘러싼 파행적 행태들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선명한 예라고 봤다. 그는 “국가 정보기관이 공직선거에 여러 모습으로 개입을 하고도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든가, 당선자인 대통령이 그것을 침묵으로 깔아뭉개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큰 위기”라고 말했다.

한승헌 변호사는 14일 오후 서울시청 시정고문단 사무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독재정권에 맞서 오랫동안 싸우고 그 결과로 어느 정도 민주주의를 쟁취했는데 그것이 허망하게도 다시 흔들리고 역진하는 그런 단계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 변호사는 검찰의 위기가 위중하다고 봤다.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5년 동안 검사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검찰의 독립성이나 중립성이라는 말을 내놓을 수 없을 만큼 외부의 강탈과 내부의 자해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5·16 군사쿠데타 등 기구한 정치적 파고 속에서 여러 검찰의 모습을 봤지만 대통령한테 불리할 것 같은 수사를 한다고 총장을 찍어내고 수사팀장을 찍어내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 때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이 증거도 없고 죄도 안된다며 집단적으로 기소를 거부했지만 검사들을 항명이나 직무유기라고 찍어서 신상에 불이익을 준 적은 없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 때도 그렇게 안 했는데 지금은 보란 듯이 저렇게 하는 것을 보면 사태가 매우 엄혹하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실망감과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어린 나이에 부모의 비극을 겪었고 유신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잘하지 않겠나’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국정원 개입 논란이 있긴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아버지보다는 민주적 방식으로 대통령이 됐고 아버지 때의 철권정치가 갖는 효율성과 반민주성의 양면을 다 본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것을 거울 삼아 잘했으면 누구의 딸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좋은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지금의 박 정권도 과거의 박 정권처럼 1인 치하로 돌아가고 있다”며 “대통령 주변을 유신시대에 공을 세운 사람과 군사적 사고가 가득 찬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전망도 흐리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여당은 정부에 종속된 별동부대다. 행정부를 감독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없고 오히려 행정부가 던지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 복창한다”며 “정당이 정부 산하에 있으면 정당이 아니다. 정당이라는 게 정권의 모태가 되고 정권을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 새누리당이 정부를 이끌어 나간다고 볼 사람은 새누리당 안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된 법을 고치겠다면 법률개정안을 내야지, 입법기관이 제 손으로 만든 법률의 위헌심판을 제청한다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시대의 화두를 묻는 질문에 ‘국민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집권자의 반성, 그리고 입법·사법부가 제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6월항쟁이 그러했듯이 국민의 힘이 강하면 집권자도 물러나게 돼 있다. 권력자들이 할 수 없다면 결국 1차 주권집단인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내란선동한다고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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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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