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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는 2014년 ‘정윤회 문건’을 지면에 게재하며 박근혜 정권의 비선 국정개입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2년 만에 최순실씨를 비롯한 비선 세력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면서 세계일보 보도는 정당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조현일 기자를 비롯한 취재기자들은 보도를 위해 많은 관계자를 만나거나 현장을 탐문하며 문건 진위와 실체 파악에 전력을 기울였다. 특히 문건을 생산하고 보고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 등 핵심 관계자를 수차례 만나거나 통화하며 확인을 거듭했다. 당시에는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두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지만 최근 비선 국정농단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국민 알권리가 우선이라는 공익적 판단에 따라 그 내용을 공개한다. 두 사람과 개별적으로 만났지만 편의상 일자를 생략하고 독자 이해 차원에서 순서도 재구성했다.
― 감찰이나 검증에 임하는 자세랄까, 원칙이 있는가.
조응천(이하 조): “VIP(대통령)를 위해 제대로 평가를 하도록 제대로 된 식탁을 올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끼리 소주 마시러 가 감찰 및 검증 행정관들이 ‘이런 것까지 할 필요가 왜 있느냐,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라고 하면 의무론을 설파하곤 했다. ‘대통령 권한의 90%는 인사권이다, 그것을 제대로 행사하느냐 마느냐가 정권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가 ‘정수기’인데 내가 안다고 ‘필터’를 빼고 다른 사람은 넣고 그러면 되겠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풀스윙 할 수밖에 없다. 완급을 조절하면 나와 너희 모두 죽는다, 무조건 풀스윙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 감찰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박관천(이하 박): “조비(조 전 비서관)는 측근 감찰은 감찰이 아닌 케어(관리)라고 했다. 조(응천)가 설거지, 교통정리를 다했다. 사고에 10단계가 있으면 (우리들은) 2, 3단계에서 막아버린 거다. ”
―감찰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
조: “우리가 너무 일을 야멸차게 잘했던 거지. 우리야 테이블에 올려주면 먹을지 말지는 위에서 결정하니까. 앞뒤 좌우를 안 보고 앞만 보고 갔다.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 되거든. 우리가 엑스(반대)를 그었으면 대통령의 결심 말고는 안 되는 전통을 만들어야 된다. 그래도 ‘먹을 거야’라고 하면 ‘드세요, 그건 당신 권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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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 |
―박 대통령에 직보도 했는가.
조: “보통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필요한 건 (김)실장도 바이패스(통과)하고 ‘할매’(박 대통령)한테 올렸다. 내가 3년 동안 (박 대통령) 캠프에서 일해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윤회(문건 작성 및 보고) 그때부터 ‘맛’이 갔고 문건 유출은 (경질)명분이었다.”
―그래서 2014년 4월 청와대에서 나온다.
조: “걔들(비선과 문고리들)이 안 되겠거든. 그래서 덫을 놓은 거다. 문건 유출에 대한 관리 책임. 내가 (청와대에서) 나오고 난 뒤엔 아예 (문건 유출자를) 박(관천)이라고 단정을 하더라. ‘너희들이 문건 유출하지 않았다는 걸 밝혀라, 못 밝히면 (범인은) 너희들이다’고. 나하고 박관천은 유죄추정이고, 다른 사람들은 무죄추정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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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천 |
―그럼 경질이네.
박: “‘문고리’는 떼어낼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관리를 하니까 반발을 하지. VIP 입장에서 정(윤회)은 버릴 수 없는 카드 아니냐. 그들은 ‘(박)지만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조(응천)가 지만이를 엮어 자꾸 그러는 것 같다, 조(응천)를 빼내자’고 한 거다.”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나온 뒤죠.
박: “내가 (2014년 2월 청와대에서) 나가고 4월에 (조응천이 청와대에서) 나갔다. 나한테 ‘순망치한’이라고 그러더라. 내가 (청와대에) 있었으면 조(응천)를 지켰을 거다. 나중에 누가 ‘조(응천)를 제거하기 위해 님(박관천)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오더라.”
― 경질의 진짜 배경은 뭔가.
조: “이 정부는 이성적이지 않다. 박지만은 대통령이랑 연락이 안 된다. 야들(비선과 문고리 권력)이 전부 차단을 한다. 이들이 나를 왜 이렇게 ‘갈구느냐’.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지네들이 장난치는 것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거다. 그러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지만밖에 없다. 그 박지만에게 콘텐츠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조응천이다. 조응천이 콘텐츠를 갖출 수 있게 하는 망들을 지금 다 자르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박지만과는 어떤 사이인지.
조: “우호적이지만, 난 박 회장의 똘마니가 아니다. ‘당신(박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망해’라고 말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다. 내가 초임 검사로 서울 남부지검 특수부에 있을 때 영등포에서 마약범을 잡았는데 그 사람이더라. ‘아버지(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느냐, 대한민국 국격이 어떻게 되느냐, 빨리 손을 떼야 한다’고 했다. 공주치료감호소에 가둬놓고 교정도 했다. 박근혜 선거캠프에서 일하며 신상관리를 담당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거다.”
― 청와대에서 나온 뒤 생활은.
조: “내가 ‘안티 문고리의 아이콘’처럼 됐다. 후회는 안 한다. 그런데 우병우(당시 민정비서관) 등이 ‘내가 돈을 받아먹은 소문이 있다’고 한다는데, (측근을) ‘조진다’며 (돈을) 받아먹느냐. 말도 안 된다. 나에 대해 적개심이 이렇게 심할 줄 생각도 못했다.”
―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는데.
조: “설마 사람을 완전히 굶게는 하겠느냐 싶었는데 지금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자영업밖에 못한다. 이 정부가 아무것도 안 보여주니까 ‘카더라 찌라시’가 많다. 거기에 내가 마치 ‘스타워즈’의 ‘제다이’, 혼자 거대악과 싸운 놈처럼 돼있다. 그래서 아무런 콜이 없다. 김앤장에서도 아무 연락도 않고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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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7일 대구 달성군 현풍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열린 대구광역시 업무보고 자리에 참석한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김앤장도 콜이 없었나.
박: “조비(조 비서관)는 아무 곳도 못 간다. 김앤장에서도 안 받아요. 김기춘이 김앤장에 ‘조(응천)를 받지 말라, 받으면 세무조사 들어간다’고 연락했다더라. 위에서 조비를 김앤장에 데리고 들어간 사람을 다 불러 ‘앞으로 조응천(을) 만나지 마라’고 했대. 국세청 출신 최모씨 등 그런 사람을 통해 그렇게 했다고 그러더라.”
― 요즘 두 사람간 만남이 뜸하다던데.
박: “안봉근(비서관)이 (조응천을) 씹고 다닌다. 지금도 정(윤회)과 싸우는 사람이 조(응천)다. 최근 ‘회사’(경찰) 수뇌부로부터 ‘요즘도 조(응천)를 만나느냐’고 연락을 받았다. 접촉을 자제하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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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여파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
―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왜 퇴출된 건가.
조: “내가 알기론 남 원장이 나가기 전에 BH(청와대)에서 ‘국정원 내 박관천이랑 친한 놈들의 명단을 내놓으라’고 했다더라. 남 원장은 ‘인사는 내가 한다, 신경 끄라’고 했다. 남 원장은 대신 ‘정(윤회)과 관련한 팩트를 내놔라, (청와대에) 들고 갈게’라고 지시하고 (비선에 대해) 알아보려다 들켰던 것 같다. ‘니 지금 뭐하노, 와 쓸데 없는 짓을 하노’. 그래서 남 원장이 날아갔다. (조응천 및 박관천과 친한 국정원내 인사) 명단을 내놓으라는 데 버티고 ‘정(윤회)에 대한 팩트를 찾으라’고 독려하고 그것이 감지돼…. 남 원장이 (국정원에서) 나가자마자 고모(국장)도 날린 거다.”
(박 전 행정관은 이와 관련, “남 원장이 (정윤회 관련) 보고서를 올리고 이틀 만에 집에 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 비선 보고서를 냈다고 정보 기관장을 경질했다는 건가.
박: “이재수 기무사령관도 그것 때문에 날아갔다고 하더라. (이 사령관이) 나중에 ‘남재준 선배가 날아갈 때 빨리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한발 더 나갔다가 날라갔다’고 후회했다. 이재수는 (경질)보도가 나오기 이틀 전 (경질을) 알고 하루 전날 오랜 인연이 있는 박지만 회장과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 이재수가 그날 오후 4시부터 아무 말도 안 하고 술만 먹었대.”
― 비선은 왜 체크가 안되는 건가.
조: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완전히 죽었고 아무 일도 안 한다더라. 민정(비서관실)은 재들(비선과 문고리들)을 빨아주고. 나는 이것을 알아보다가 죽었다. (비선) 근처에 가면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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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한 직후 검찰이 세계일보 본사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진 2014년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세계일보 사옥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 우리가 비선 문제를 제기해보겠다.
박: “세계일보가 만약 정윤회 등 비선 문제를 쓰면 곧바로 ‘골’로 간다. 정(윤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정에 대한 것은 소도(삼한시대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 또는 지역으로 성역이었음)이다, 소도. 정(윤회)이란 말을 꺼내는 순간 청와대 전체와 싸우게 된다.”
―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박: “정(윤회)을 이야기하다가 무사한 사람이 있느냐. 조응천(공직기강비서관) 날아갔죠, (남재준) 국정원장과 (이재수) 기무사령관도 모두 날아갔다. 내가 알기로는 삼성 정보팀도 정(윤회) 관련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데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있다.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이 ‘(비선 관련 내용은) 보고만 하고 입밖에 내지 말라’고 그랬다더라.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브레이크가 완전히 해제됐다. 벼랑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보도해 보겠다. 3년만 버티면 되지 않겠는가.
박: “아이고 의미 없다. 기자 생활에서 최고 위험한 일을 하는 거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로, (보도가 채) 끝나기 전에 죽을 것이다. 앞으로 3년은 검찰청에 불려다닐 거요. 조(응천)도 더 이상 말을 안 하지 않느냐. 나도 웬만하면 추위를 안타는데 추위를 타고 있다.”
― 봉인이 풀리면 타사가 따라오지 않겠느냐.
박: “(타사가) 따라오는 속도보다 세계일보가 맞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정(윤회)이 터지면 민정과 정무, 홍보, 경제 등 청와대가 달려들 것이다. 검찰, 국세청도 다 동원하겠지.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하고 국세청도 자료가 많은 걸로 안다. 대표적인 보수언론 A, B사도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걸로 알지만 안 쓰고 있질 않느냐.”
― 왜 소도인지 알려야 하지 않느냐. 나라가 잘못되면 안 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자.
박: “알리면 뭐 하느냐.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 ‘왜 소도를 보느냐’고 곧바로 반격이 들어올 거다. 세계일보가 쓰면 통일교에도 손댄다. 옛날에는 종교에 손을 안 대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이 정부는 그게 없다. 막가버리니까. 왜 소도에 창을 들고 들어가 군주랑 싸우려 하느냐. 왜 세계일보가 총대를 메려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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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담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만들고 보고한 당시 청와대 공직기관비서관실의 조응천(왼쪽) 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오른쪽). |
추위가 시작됐던 그해 11월28일 세계일보는 지면을 통해 마침내 비선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검찰은 세계일보의 문제제기를 ‘문건유출’ 프레임으로 몰아갔고 실체 규명을 방해했으며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본보를 탄압했다.
당시 청와대와 검찰의 진실 은폐공작과 인권유린, 언론자유 침해 등은 잘못을 고치고 새 출발의 기회를 걷어찼을 뿐만 아니라 비선과 그 방조자들에게 면죄부를 줘 국정농단을 가속화시켰다는 점에서 탄핵의 불씨를 지핀 셈이다.
한창 무더웠던 1974년 8월8일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탄핵으로 내몰리고 결국 상원 탄핵 전날 스스로 물러난 건 범죄행위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특별취재팀: 김용출·이천종·조병욱·박영준 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