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12-19 오전 7:10:54
1년 전, 그는 쉴 새 없이 '100% 대한민국'을 외쳤다. '99%를 위한 정당'을 내건 민주통합당을 뛰어넘는 강한 통합 의지를 드러내려는 선거 슬로건이었지만, 100%라는 수치가 보여주는 완결성이 못내 불편했다. 각기 다른 빛깔의 사람들이 부대끼는 세상에서, 단 한 치의 다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닌지. '100% 대한민국' 슬로건에 대한 첫 인상은 그랬다.
대선 1년. 구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기간 내내 강조했던, 통합의 '의지'마저 사라진 데 있다.
지난 1년 동안, 국내 정치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이념을 동원해 나라를 둘로 갈랐고, 절반의 지지에 기반해 '정치'가 아닌 '통치'를 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50%를 크게 웃돌지만, 애초 그가 '포용하겠다'던 반대파는 물론 중간층조차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층의 지지에만 안주해 너무 쉬운 길을 가고 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진단이다.
거침없이 '우향우'!…朴정부 1년, 공안-물타기의 '위험한 이중주'
보수층의 지지에만 안주한 채 '쉬운 길'을 간 것은 집권 1년차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으로 인한 국민적 저항이 대대적인 촛불집회로 확산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향우했다.
차이가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더 공격적이었다. "유신의 딸"이라며 애초부터 그를 신뢰하지 않았던 이들조차 "이렇게 빨리!"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성급하고도 공세적으로 '공안'을 통치의 한 축으로 소환했다. 촛불집회에 '데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종의 반작용으로 오른편으로 질주한 것과 다르다.
물론 이 전 대통령에게 '촛불'이란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박 대통령에겐 국정원이 있었다. 1년 내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인한 정통성 시비가 따라 붙었고, 그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야권을 몰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박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 기반으로 볼 때 좀 더 유연성을 가져도 될 일이었다. 어차피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나는 모르는 일", 관련자들을 엄정하게 처벌하고 국정원을 바로잡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날 일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 스스로 사태를 더 키웠다. 대선 승리 직후 "소중한 국정 운영의 파트너"(2012년 12월20일, 선대위 해단식)로 칭했던 야당이 단 한 순간도 '파트너'로 일할 수 있는 명분을 주지 않았고, 어떤 협상이나 타협도 용납되지 않았다.
대신 순간순간 '물타기 전략'이 가동됐다.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이 한창일 당시, 느닷없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 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의 영토선인 NLL을 북한에 헌납했다'는 공세가 대화록 불법 유출 시비를 덮었고, 기밀 문건이라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확산되는 대선 개입 의혹을 막는 방패막이로 활용됐다.
종북몰이도 이어졌다. 지난해 대선 토론회 당시 박 대통령을 향해 '다카기 마사오'를 외치는 '역린'을 범했던 이정희 대표의 통합진보당은 33년 만에 내란음모 혐의를 받은 데 이어, 이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이 청구돼 정당 자체가 해산될 위기다. 해산 심판 사유도 흥미롭다. "민중이 주인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를 명시한 통합진보당의 강령이 '국민주권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정홍원 총리는 지난달 5일, '국민'과 '민중'의 차이를 묻는 오병윤 의원의 질의에 "민중은 조금 뭐,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답했다. 국민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해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며 끝내 특검 요구를 외면한 박 대통령은, 유독 통합진보당 해산건은 해외 순방 중임에도 신속하게 결재하는 등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 옭죄기'도 본격화됐다. 박 대통령이 과거 "한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다"(2005년 12월15일)며 '해충'에 빗댄 전교조엔 '노조 아님'이 통보됐고, 철도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에 나선 철도노조엔 대통령이 앞장 서 "국가경제 동맥을 볼모로 한 불법 파업"(16일)이라고 낙인 찍었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노조 옭죄기는 있었지만, 그 대립 지점이 경제 문제가 아닌 이념에 있다는 게 섬뜩한 차이다.
'자랑스러운 불통'? '100% 대한민국', 그들만의 공화국이었나
대선 1주년을 앞둔 지난 17일, 민주당은 박 대통령을 향해 "대처의 길이 아닌 메르켈의 길을 가라"는 주문을 담은 논평을 냈다. "야당을 무시하고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분열과 갈등의 대처 식 정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수 차례 영국의 마거릿 대처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 날인 18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항변성 브리핑'은 민주당의 이런 요구가 '허공에 소리 지르기'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이 수석은 철도파업을 염두에 둔 듯 "공기업 개혁엔 당연히 저항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런 저항 세력 앞에서 굽히지 않는 걸 불통이라고 한다면 5년 내내 불통 얘기를 듣겠다"고 했다. "광부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곧 의회민주주의에 의한 통치를 폭도들의 통치에 넘겨주는 것"이라던, 대처의 대응과 다분히 흡사한 논리 전개다.
박 대통령의 뜻을 너무도 잘 알아 '복심(腹心)'으로 불린다던 이 수석의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대처의 길'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듯 하다. 단 민주당의 우려대로, '나쁜 면'에서만 그렇다.
"우리는 포클랜드에서 외부의 적(敵)과 싸워야 했지만,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하고 힘든 '내부의 적'을 늘 경계해야 한다". 1984년 탄광노조의 파업이 거세지자, 대처는 의회 연설을 통해 파업에 참여한 광부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다.
지난 1년 동안, 이 '살벌한 갈라치기'가 반복됐다. 박 대통령에게 '내부의 적'은 통합진보당이었고, 전교조였고, 박창신 신부였고, 이번에는 철도노조인 듯 하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었고,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한 이념 공세가 끝도 없이 몰아쳤다. 그러나 이 갈라치기는, 절반의 '내 편'을 결집시키는 힘이 됐다.
불행한 것은 대통령과 참모들의 상황 인식이다. 이정현 수석은 "원칙대로 바르게 가면서 국민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길을 방해하고, 못 가게하고,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는 세력과 소통하지 않은 것을 불통이라 한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대선 1년을 맞아 쏟아지는 '불통' 평가에 대한 답이었다.
"자랑스러운 불통"이란 형용모순에서, '100% 대한민국'의 위험한 전개 방식이 읽힌다. 100%라는 완결된 숫자에 대한 불편함은, 이제 단순한 거부감을 넘어 우려로 번진다. 대통령이 선거 내내 강조했던 100% 대한민국은, 어쩌면 바깥의 반대파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자신만의 '100% 공화국'이 아니었는지.
대선 1년. 구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기간 내내 강조했던, 통합의 '의지'마저 사라진 데 있다.
지난 1년 동안, 국내 정치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이념을 동원해 나라를 둘로 갈랐고, 절반의 지지에 기반해 '정치'가 아닌 '통치'를 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50%를 크게 웃돌지만, 애초 그가 '포용하겠다'던 반대파는 물론 중간층조차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층의 지지에만 안주해 너무 쉬운 길을 가고 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진단이다.
거침없이 '우향우'!…朴정부 1년, 공안-물타기의 '위험한 이중주'
보수층의 지지에만 안주한 채 '쉬운 길'을 간 것은 집권 1년차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으로 인한 국민적 저항이 대대적인 촛불집회로 확산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향우했다.
차이가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더 공격적이었다. "유신의 딸"이라며 애초부터 그를 신뢰하지 않았던 이들조차 "이렇게 빨리!"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성급하고도 공세적으로 '공안'을 통치의 한 축으로 소환했다. 촛불집회에 '데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종의 반작용으로 오른편으로 질주한 것과 다르다.
▲ 지난 2월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프레시안(최형락) |
물론 이 전 대통령에게 '촛불'이란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박 대통령에겐 국정원이 있었다. 1년 내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인한 정통성 시비가 따라 붙었고, 그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야권을 몰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박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 기반으로 볼 때 좀 더 유연성을 가져도 될 일이었다. 어차피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나는 모르는 일", 관련자들을 엄정하게 처벌하고 국정원을 바로잡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날 일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 스스로 사태를 더 키웠다. 대선 승리 직후 "소중한 국정 운영의 파트너"(2012년 12월20일, 선대위 해단식)로 칭했던 야당이 단 한 순간도 '파트너'로 일할 수 있는 명분을 주지 않았고, 어떤 협상이나 타협도 용납되지 않았다.
대신 순간순간 '물타기 전략'이 가동됐다.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이 한창일 당시, 느닷없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 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의 영토선인 NLL을 북한에 헌납했다'는 공세가 대화록 불법 유출 시비를 덮었고, 기밀 문건이라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확산되는 대선 개입 의혹을 막는 방패막이로 활용됐다.
종북몰이도 이어졌다. 지난해 대선 토론회 당시 박 대통령을 향해 '다카기 마사오'를 외치는 '역린'을 범했던 이정희 대표의 통합진보당은 33년 만에 내란음모 혐의를 받은 데 이어, 이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이 청구돼 정당 자체가 해산될 위기다. 해산 심판 사유도 흥미롭다. "민중이 주인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를 명시한 통합진보당의 강령이 '국민주권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정홍원 총리는 지난달 5일, '국민'과 '민중'의 차이를 묻는 오병윤 의원의 질의에 "민중은 조금 뭐,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답했다. 국민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해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며 끝내 특검 요구를 외면한 박 대통령은, 유독 통합진보당 해산건은 해외 순방 중임에도 신속하게 결재하는 등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 옭죄기'도 본격화됐다. 박 대통령이 과거 "한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다"(2005년 12월15일)며 '해충'에 빗댄 전교조엔 '노조 아님'이 통보됐고, 철도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에 나선 철도노조엔 대통령이 앞장 서 "국가경제 동맥을 볼모로 한 불법 파업"(16일)이라고 낙인 찍었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노조 옭죄기는 있었지만, 그 대립 지점이 경제 문제가 아닌 이념에 있다는 게 섬뜩한 차이다.
'자랑스러운 불통'? '100% 대한민국', 그들만의 공화국이었나
대선 1주년을 앞둔 지난 17일, 민주당은 박 대통령을 향해 "대처의 길이 아닌 메르켈의 길을 가라"는 주문을 담은 논평을 냈다. "야당을 무시하고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분열과 갈등의 대처 식 정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수 차례 영국의 마거릿 대처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 날인 18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항변성 브리핑'은 민주당의 이런 요구가 '허공에 소리 지르기'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이 수석은 철도파업을 염두에 둔 듯 "공기업 개혁엔 당연히 저항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런 저항 세력 앞에서 굽히지 않는 걸 불통이라고 한다면 5년 내내 불통 얘기를 듣겠다"고 했다. "광부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곧 의회민주주의에 의한 통치를 폭도들의 통치에 넘겨주는 것"이라던, 대처의 대응과 다분히 흡사한 논리 전개다.
박 대통령의 뜻을 너무도 잘 알아 '복심(腹心)'으로 불린다던 이 수석의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대처의 길'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듯 하다. 단 민주당의 우려대로, '나쁜 면'에서만 그렇다.
"우리는 포클랜드에서 외부의 적(敵)과 싸워야 했지만,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하고 힘든 '내부의 적'을 늘 경계해야 한다". 1984년 탄광노조의 파업이 거세지자, 대처는 의회 연설을 통해 파업에 참여한 광부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다.
지난 1년 동안, 이 '살벌한 갈라치기'가 반복됐다. 박 대통령에게 '내부의 적'은 통합진보당이었고, 전교조였고, 박창신 신부였고, 이번에는 철도노조인 듯 하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었고,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한 이념 공세가 끝도 없이 몰아쳤다. 그러나 이 갈라치기는, 절반의 '내 편'을 결집시키는 힘이 됐다.
불행한 것은 대통령과 참모들의 상황 인식이다. 이정현 수석은 "원칙대로 바르게 가면서 국민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길을 방해하고, 못 가게하고,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는 세력과 소통하지 않은 것을 불통이라 한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대선 1년을 맞아 쏟아지는 '불통' 평가에 대한 답이었다.
"자랑스러운 불통"이란 형용모순에서, '100% 대한민국'의 위험한 전개 방식이 읽힌다. 100%라는 완결된 숫자에 대한 불편함은, 이제 단순한 거부감을 넘어 우려로 번진다. 대통령이 선거 내내 강조했던 100% 대한민국은, 어쩌면 바깥의 반대파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자신만의 '100% 공화국'이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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