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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1동 캐피탈타워 23층 페이스북코리아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즐겁게 얘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 좋은 일자리 프로젝트
회사 다닐 만해요?
2부 성취감
(1) 페이스북코리아
회사 다닐 만해요?
2부 성취감
(1) 페이스북코리아
“이 회사는 이상한 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없어요. 여기 온 지 다섯 달이 됐는데 저한테 업무 지시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국내 대기업에 다니다 최근 페이스북코리아로 이직한 염지현(30)씨가 말했다. 이곳 직원들은 페이스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에는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업무 지시가 없고, 하이어라키(위계화된 조직구조)가 없고, 직함이 없다. 근태관리도 없고, 결재 시스템도 없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회사로 손꼽힌다.
페이스북코리아는 미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기업 페이스북의 한국지사다. 2010년 직원 1명으로 설립돼 현재는 50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주로 국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2004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재학중이던 마크 저커버그가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든 ‘페이스메시’라는 서비스에서 출발한 페이스북은 12년이 지난 현재 1만2691명(이하 2015년말 기준)이 일하며 179억2800만달러(약 21조185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글로벌 기업이 됐다.
페이스북은 미국의 직장평가 사이트 글라스도어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에 2012년부터 2년 연속 1위에 선정됐고, 지난해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페이스북코리아 또한 다르지 않다. 지난해 취업정보 사이트 잡플래닛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외국계기업 부문)에 선정됐다.
이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페이스북코리아 사무실에서 이곳 직원들을 직접 만났다. 페이스북은 시스템이나 정책이 아닌 ‘말’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다. 이들은 ‘말’을 공유하고 그것을 실천한다.
“완벽보다 실행이 낫다”(Done is better than perfect)
“이 회사에 오고 나서 정말 특이했던 것 중 하나가 업무 승인을 위한 결재 과정이 없다는 거에요.” 페이스북코리아의 글로벌마케팅솔루션즈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손현호(42)씨가 말했다. 손씨는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를 거쳐 4년 전 페이스북코리아에 합류했다. 이전 회사들에서는 손씨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싶으면 기획안을 짜서 문서든 전산이든 차례대로 팀장, 부장, 임원, 사장의 결재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코리아에는 그런 보고와 결재 시스템 자체가 없다고 한다. 손씨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누가 일을 시키지도 않고, 하겠다는 일을 못하게 하지도 않는다.
염지현씨는 “회사나 팀 차원의 큰 목표는 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지는 나의 몫”이라고 했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자신의 매니저와 상의하고 바로 실행한다. 이때도 매니저는 ‘해라’, ‘마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다른 팀, 부서와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염씨는 “내가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매니저에게 이야기하면, 매니저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주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등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일을 진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잘못돼서 책임을 지게 될까 불안하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이 나오자 김보영(35)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완벽한 것보다 일단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어요. 완벽하게 하려고 보고서 쓰고 검토받고 결재받으면서 느리게 움직이는 것보다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수정하는 게 좋다는 거죠.” 페이스북의 여성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한 이 말은 페이스북 직원들이 실패를 겁내지 않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책임지는 분위기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의 여행은 1%밖에 끝나지 않았다.”(Our journey is just 1% finished)
페이스북코리아 직원들이 누리는 업무의 자율성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출·퇴근을 체크하지 않고, 정해진 장소에 있을 것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꼭 회사에서 해야 할 업무가 아닐 경우에는 집에서 일하겠다고 매니저에게 알리는 것만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페이스북코리아에는 근태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높은 자율성을 누리는 만큼 업무 강도는 만만치 않다. 손현호씨는 “이 회사는 좋은 회사지만 쉬운 회사는 아니다. 직원들에게 애초에 기대했던 그 이상을 요구하지 기대 수준을 낮춰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보영씨는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업무 부담은 엄청나다. 내가 읽고 이해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업데이트만 해도 매주 수십개”라며 “조금만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회사가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지게 된다”고 했다. 페이스북코리아에서는 직원들의 매년 입사일마다 서로 축하를 해준다. 이때 축하를 받는 이들은 “내가 O년 살아남았다”는 말들을 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코리아 직원들은 업무에 대한 압박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또 이런 게 있어요. ‘우리의 여행은 아직 1%밖에 끝나지 않았다’. 회사는 끊임없이 ‘우리는 이런 방향을 향해 갈 거야’, ‘우리가 하려고 하는 건 이런 거야’라고 말해줘요. 일이 많다고 소모된다는 느낌보다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걸 느껴요.” 외국계 아이티(IT)기업의 해외지사에서 일하다 3년 전 페이스북코리아에 합류한 김보영씨는 “회사와 비전을 공유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이 회사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아니다. 사람이다”(Not User, People)
회사는 직원들의 ‘근태’를 관리하는 대신 ‘상태’를 관리한다. 염지현씨는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매니저가 나에게 ‘일하다보면 힘든 시기가 반드시 올 거야. 그때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줘. 그건 당연한 거야’라고 이야기해줬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코리아에 합류한 이들은 모두 듣게 되는 말이다. 이곳에서는 업무가 버겁거나 힘들 때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대신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알리고, 적절한 조언과 지원을 받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규모가 크지 않은 페이스북코리아의 경우 해외의 지사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나 ‘핵’(비공식적 회의)에서는 업무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이나 스트레스, 행복 등도 매우 중요한 의제로 자주 다뤄진다. 매니저는 담당 직원들과 2주에 1번 정도는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서로 상태를 살피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것을 정책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에만 면담을 하게 되면 직원이 매니저에게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어 중 “사용자가 아니다.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2014년 페이스북의 제품디자인 책임자인 마가렛 굴드 스튜어트는 페이스북에서 ‘사용자’라는 용어를 금지하고 이를 ‘사람’이란 말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로도 이해된다. 손현호씨는 “이전에 있었던 회사들과 비교하면 페이스북은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아는 회사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손씨는 페이스북에 합류할 당시 6번의 일대일 인터뷰 과정을 거쳤다. 손씨는 “나 한 사람을 뽑기 위해 이들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쓰고 공을 들이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 능력과 경력에 대한 질문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해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더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상을 만들자”(Make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
“우리 회사의 미션(사명)이 ‘더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인데, 미션과 실제로 일치하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내부에서 소통이 많아요.” 염지현씨는 자신보다 12살이 더 많은 이사급인 손현호씨를 ‘현호님’이라고 부른다. 손씨도 염씨를 ‘지현님’이라고 부른다. 웬만해서는 서로 나이나 학번도 모른다. 김용범 페이스북코리아 지사장도 회사 안에서는 ‘용범님’이다. 페이스북에는 보통의 기업들에 있는 하이어라키(서열화된 조직구조)가 없다. 자신의 업무 분야와 자신의 매니저가 있을 뿐이다.
손현호씨는 “회의나 대화를 많이 할 수는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등한 발언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책임자(CEO)인 저커버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현장과 온라인을 통해 공개적인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이를 전 세계 지사에 생중계한다. 손씨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이가 많다거나 경력이 많다고 더 센 발언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염씨는 “의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반영된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최근 염씨가 속한 파트에서는 지난달 열린 ‘핵’에서 네 단계로 이뤄져 있는 현재의 업무 프로세스 중 두번째 단계가 불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자, 그 부분을 생략한 채 일을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되돌리자고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결정한 바로 그 순간부터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가 적용됐다.
페이스북에는 회식 문화가 없지만 대신 ‘핵’을 자주 한다. 핵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팅’과 달리 회사 내의 특정 이슈에 대해 다같이 모여 음식을 먹으면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이다. 업무 방식은 물론, 회사의 문화, 관계 등도 주로 다뤄지는 주제다. 얼마 전에는 전 직원들이 모두 오후 시간을 비우고 함께 ‘우리 회사는 어떤 곳인가’, ‘우리는 행복한가’와 같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고 한다.
“기업이 되려고 만들어지지 않았다”(Facebook was not originally created to be a company)
소통은 페이스북 고유의 문화를 기억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김보영씨는 “우리가 이야기한 것이 현실에 다 반영되기는 어렵다.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 그 자체가 우리의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잊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직 규모가 점차 커져감에 따라 현재의 조직문화를 어떻게 유지할지 모두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 직원들이 자주 인용하는 또다른 말이 있다. 저커버그는 2012년 2월 페이스북을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하기 전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이스북은 원래 기업이 되려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세상을 더 개방적이고 연결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현재 페이스북은 거대한 거대 글로벌 기업이 됐다. 페이스북은 2012년 5월 상장될 당시 시가총액 1040억달러(약 123조원)를 기록해 미국 증시 역사상 가장 높은 가치로 상장된 기업이 됐고, 26일(이 부분은 출고일 기준으로 수정) 현재 시가총액 3422억달러(약 404조원)로 구글, 애플 등에 이어 기업규모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작은 해커집단에서 거대한 자본이 된 페이스북은 내부적으로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신속하고 과감하게 움직이는 조직문화를 유지하고, 대외적으로는 돈벌이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집단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든 사무실 천장을 마감 공사하지 않아 미완성된 느낌을 유지하거나, 기업공개 당시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운영 원리로 ‘해커웨이’를 천명한 일, 또 지난해 12월 저커버그가 자신이 보유한 페이스북 지분 99%를 사회 공헌에 사용할 것을 밝힌 것 등이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페이스북을 둘러싼 논란과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은 각종 논란을 겪고 있다. 페이스북은 영국이나 독일 등 세율이 높은 큰 시장에서 발생한 수익을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세운 유럽본부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조세회피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4년 영국에서 1억500만파운드(약 1827억원)를 벌고도 법인세로 4327파운드(약 753만원)을 냈다. 페이스북코리아도 국내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 수준에 불과하다.
페이스북은 개방과 연결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고 있지만,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과 정보 불균형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빅브라더’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페이스북은 화제의 글을 노출시키는 트렌딩 서비스와 관련해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편집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고된 게시물이나 페이지를 차단할 수 있는 커뮤니티 규정을 편파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반복돼 ‘블루일베’라는 오명도 받고 있다. 지난 30일 <강남역 10번출구 자유발언대> 등이 커뮤니티 규정 위반을 이유로 삭제되는 반면,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페이지들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내부 잡음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가디언>은 “(페이스북 내부의)관리 부실, 위협, 편파주의, 성차별이 업무환경을 매우 악화시켰다. 직원들은 분노했고, 침체됐으며 목소리를 잃었다. 특히 여성들이 그랬다”는 전직 직원의 폭로를 보도했다. 블룸버그데이터를 보면 페이스북 이사회 구성원 8명 중 여성은 2명, 임원 7명 중 여성은 단 1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수익성보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이런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직원들의 성취감을 저해하고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는 “조직이 커지면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회사가 얼마나 단호한 조치를 보이고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니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이 회사에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숨가쁜 회사 생활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기도 하지만 일 속에서 ‘성취감’을 맛보는 이들의 직장생활은 즐겁기만 하다. ‘일러스트 양경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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