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혁·조미덥·김한솔 기자 jhjung@kyunghyang.com

ㆍ검증대 오른 ‘안희정 노선’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가 20일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당 전국여성위원회 연수에 참가해 전날 ‘부산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가 20일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당 전국여성위원회 연수에 참가해 전날 ‘부산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52)의 중도노선이 본격적인 검증대에 섰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는 그의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다.

안 지사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 계승” “대연정 추진” 등 중도노선 연장선에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안 지사의 중도 실험은 물론 쾌속 항진하던 대선 행보도 고비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박 대통령 선의냐, 범행 의도냐” 

안 지사는 19일 부산대 즉문즉답 행사에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그랬다”며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미르·K스포츠 재단도 대기업의 후원금을 받아 평창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것이 법과 제도에 따르지 않으면 이런 (국정농단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안 지사 발언은 크게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정치에서 ‘선의’보다 중요한 건 법과 제도라는 취지다. 둘째, 박 대통령의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은 선의에서 시작된 일이라는 가정이다. 셋째, 박 대통령은 두 재단 모금 과정에서 위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넷째, 따라서 선의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잘못됐다는 결론이다. 

안 지사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아무리 좋은 선의나 목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법을 어기거나 잘못을 저지른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며 “수단을 정당화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자는 것이 발언 취지”라고 해명했다. 

[대선 포커스]진심일까, 전략일까…거침없는 안희정, 고비 맞은 ‘중도행보’

당 안팎에선 안 지사 발언을 두고 “수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검과 검찰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계획적·조직적 범행과 은폐하려던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박 대통령의 선의”를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안 지사는 이날 “(박 대통령) 본인이 좋은 일을 하려고 시작했다고 하셨으니 그것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치자”는 가정법을 썼다. 하지만 민주당 한 의원은 “재단 모금은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 박 대통령 측 탄핵기각 논리”라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안 지사의 말에는 분노가 빠져 있다”며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발언 의도가 무엇이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안 지사 ‘추상 화법’ 걷어내야 

안 지사는 2013년 ‘상대방의 선의를 믿자’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방의 선한 의지를 믿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기본으로 삼자”는 내용이다. 안 지사가 전날 “남을 의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지성일 수 있느냐”며 ‘20세기의 잘못된 지성사’ 문제까지 거론한 것으로 볼 때, ‘선의’ 발언은 그의 오래된 생각으로 볼 수도 있다. 

그의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도 계승하겠다” “대연정을 추진하겠다” “국민은 공짜밥을 주는 식의 복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중도 발언 연장선에 있다. 원활한 국정운영과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선·악 이분법적 진영 논리를 넘어서서 협치를 해야 하는데, 그 전제는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않는 것,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인정하는 데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안 지사의 중도노선을 놓고는 “여소야대에서 현실적인 접근” “무원칙한 중도·보수 껴안기”라는 시각이 엇갈린다. 

하지만 당 외연 확대 등 ‘안희정표 중도노선’을 긍정평가하는 쪽에서도 논의가 생산적으로 발전하려면 안 지사 특유의 거대담론 화법, 추상적 화법을 걷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추상적 언급으로 일관하다 보니 예민한 사안에서 치열한 토론과 논쟁 대신 ‘진의논란’이 불거진다는 것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민주당이 대표해야 할 이념적, 정책적 사회기반이 무엇인지 제대로 논쟁해야 한다”며 “안 지사는 보수적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아직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허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202237035&code=910402#csidx191c3230fd2f8299a609b907189905d

Posted by 어니엘스
,